1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구조대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에서 발견한 아이의 주검을 옮기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15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알샤티 난민캠프의 한 주택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당했다. 집 안에 있던 사촌 사이인 어린이 8명이 숨졌다. 폐허가 된 집의 잔해, 흩어진 장난감과 미처 먹지 못한 음식들 속에서 생후 5개월 막내 오마르만 유일한 생존자로 발견되었다. 몇시간 뒤 에이피(AP) 통신과 알자지라 등 언론사들이 입주해 있던 건물이 이스라엘군 미사일에 파괴되는 장면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다.
외신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지금 팔레스타인의 현실이다. 지난 10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사이의 충돌이 계속되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어린이 52명과 여성 31명 등 최소 181명이 숨졌다. 이스라엘쪽 사망자는 어린이 한명을 포함한 10명이다.
이번 충돌의 도화선은 지난 10일 강경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한 로켓이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이스라엘의 강경파 네타냐후 총리가 펼쳐온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억압 정책, 유대인 정착촌 확대와 팔레스타인 주민 추방 시도로 고조된 긴장이 깔려 있다. 지난달부터 이스라엘 경찰은 기독교·유대교·이슬람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의 이슬람 사원에서 확성기 전원을 끊는 등 무슬림을 자극했다. 이스라엘 당국이 동예루살렘에서 수십년 넘게 살아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로 추방하려 하면서 분노도 확산됐다. 부패 혐의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파들의 지지를 얻고자 강경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으로 존재감을 과시해온 하마스의 책임도 없지 않지만,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무차별 폭격하고, 이미 절망적인 상황인 가자지구를 파괴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세계 최대 감옥’으로 불리는 가자지구의 200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일자리도, 생필품도, 의약품도 제대로 없는 상황을 너무 오랫동안 견뎌왔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전역의 도시에서도 유대-아랍계 주민들의 폭력적 충돌까지 벌어지면서 상황은 더욱 위태롭다. 이스라엘은 당장 공습을 멈춰야 한다.
여전히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미국 바이든 정부의 태도도 유감스럽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가 공격을 중단시키기 위한 성명을 내는 데도 반대했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에 섰던 미국 정치권에서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 진보정치의 대표격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14일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인권에 관해 신뢰받을 수 있는 목소리가 되려면 우리는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도 국제적 인권 기준을 옹호해야 한다”며 “팔레스타인인 목숨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원 외교위원장인 로버트 메넨데즈 의원도 이스라엘 공습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중국과 북한의 인권 문제를 비판해온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에 대한 이중잣대를 버려야만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과 가치 외교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