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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문 대통령-4대 그룹 ‘이재용 사면’ 논의, 유감이다

등록 2021-06-02 19:18수정 2021-06-03 09:54

‘법 앞의 평등’ 원칙 예외없이 지켜져야
급변하는 경제 환경 속 민관 협력 필요
‘일자리 창출·상생’ 다짐 빈말 안 돼야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4대 그룹 대표들과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광모 엘지그룹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 문 대통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4대 그룹 대표들과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광모 엘지그룹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 문 대통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삼성·현대차·에스케이·엘지 등 4대 그룹 대표와 청와대에서 오찬간담회를 했다. 문 대통령과 4대 그룹의 간담회는 처음이다. 미-중 갈등 등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통령과 기업인이 당면한 경제 현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4대 그룹 대표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본다. 지금 기업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해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본인 ‘법 앞의 평등’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방미 순방 때 4대 그룹이 함께해주신 덕분에 한-미 정상회담 성과가 참 좋았다”고 말했다. 4대 그룹의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 44조원 투자계획 발표에 힘입어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다. 한·미 양국은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 최첨단 기술 제품에서 글로벌 공급망 구축 등 포괄적인 협력을 합의했다. 한국 기업에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변화는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주요 국가들은 정부와 기업의 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다만 우리로서는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 기회 축소 문제도 신경써야 한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나가면 중소·중견 협력업체들도 동반 진출하게 되고, 부품·소재·장비가 더 크게 수출되기 때문에 국내 일자리가 더 창출된다”며 당부성 격려를 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도 “기회를 더 많이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정부와 기업의 공동 노력 다짐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경제5단체의 이재용 부회장 사면 건의를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도 “반도체 등 투자 결정이 필요한데 총수가 있어야 신속하게 이뤄진다”고 했다. 앞서 대한상의 등 경제5단체는 이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했고, 종교계 등에서도 요청이 있었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6명이 사면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국민들이 이 부회장의 불법행위에 대해 크게 분노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경제와 기업을 걱정하는 마음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이 부회장의 사면은 ‘법 앞의 평등’ 원칙을 훼손하는 일로, 매우 신중해야 한다. 경실련과 참여연대, 양대 노총 등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이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부회장의 사면·가석방이 경제적 투자에 대한 정치적 대가로, 또는 경제 논리로 환원돼 재벌의 기업 범죄 정당화에 악용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면서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더욱이 이 부회장은 현재 불법합병과 회계부정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재계의 최대 화두인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중시 경영과도 배치된다.

문 대통령은 사면 건의에 대해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며 “경제가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기업의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청와대가 사면론에 대해 “검토한 적 없다”고 밝힌 것과는 차이가 있다. 혹시 문 대통령의 생각이 사면 쪽으로 기운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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