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6·4 지방선거’의 해다. <한겨레>는 지난 설 연휴 직전 지방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크게 보도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안철수 신당이 쟁점으로 부각되는 등 일찍부터 관심이 뜨거운 상황이다. 지난 10일 열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는 안철수 신당과 야권연대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 태도와 관점이 적절한지, 선거 여론조사 결과는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바람직한지, 언론이 초점을 맞춰야 할 지방선거 보도의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집중 논의했다.
대다수 열린편집위원들은 안철수 신당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 “새정치의 내용이 아직 모호한 상태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중앙정치에 익숙한 선거구도 중심으로 지면을 만드는 방식에서 탈피해 지역 주민의 삶이라는 가치 측면에 좀더 비중을 두고 지방선거를 보도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여론조사 결과나 야권연대의 성패라는 이슈에 빠져들지 말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선거가 되도록 여론을 선도할 것을 제안했다.
신인령 위원장의 사회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된 제2기 열린편집위원회 4차 회의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참석자) <위원장>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사외 위원>
고윤덕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사내 위원>
박찬수 콘텐츠본부장(부위원장), 정재권 편집국 에디터부문장, 강희철 편집국 정치부장,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 중앙정치·여론조사 위주 탈피하고 지역주민의 삶과 고민 보여줘야
신인령 위원장 <한겨레>가 설 연휴 직전에 ‘6·4 지방선거 6곳 여론조사 결과’를 펼쳐 보도했다.(<한겨레> 1월29일치 1면, 5~10면) 안철수 신당의 지방선거 구상 선언 이후 지방선거 보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오늘 토론회의에선 지방선거 관련 보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선거는 대결 구도란 속성이 있고 누가 이길 것으로 예상되는지에 대한 독자의 관심도 높다. 그러나 선거가 4개월 정도 남은 상황이고 후보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가상 상황을 설정해 놓고 여론조사를 통해 선거 결과를 미리 점치는 보도를 대대적으로 펼쳐 보여준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경마장처럼 몇 번 말이 앞서고 있다는 식의 관성적인 중계방송식 보도는 피해야 한다. 오늘(10일)치 한겨레 정치면에 ‘심판론 안 먹힌다’는 기사를 실었고 칼럼면에 선거주의 폐해를 지적하는 글도 있었다. 지방선거에서 언론은 여론을 선도하면서 지역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짚어야 한다. 정권심판론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 민선 5기 지방자치 때 지역에서 새롭게 시도하고 도입한 것이 무엇이고 또 바뀐 것은 뭔지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 기사가 필요하다. 지향해야 할 가치 측면에서 여론을 주도하면서 정보를 제공해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보도가 필요하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여론조사 기사를 포함해 한겨레의 정치면 지방선거 기사를 보면 지나치게 삼국지 같은 프레임에서 보도하고 있다. 관객 입장에선 재미있겠지만 (지역)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좀 있다. 지방선거인데도 중앙정치의 지방 순회공연처럼 비치는 기사가 많고, 정작 지방자치 자체에 대한 얘기는 사라지는 딜레마를 보이기도 한다. 선거라는 게 결과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사실은 지방자치를 평가하고 검증하는 좋은 기회이자 계기가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겨레가 평소엔 각 지역의 다양한 시도를 열심히 보도하고 있는 편인데 선거 국면에서도 이를 결합해 지역의 고민을 심층적으로 드러내 보여야 한다.
고윤덕 변호사 선거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1월29일치 보도는 한겨레 쪽에서 화제와 관심을 모아보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있었던, 좀 과한 지면배치였다고 본다. 나아가 지방선거 초반에 야권단일화 쪽으로 선거구도를 잡아가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 같다. 그 전날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사건 첫 변론이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는데, 이 기사는 여론조사 특집에 밀려 한참 뒤로 빠지면서 18면에 한 꼭지만 보도됐다. 여야 선거구도 보도 속에 군소정당에 대한 기사와 관심은 위축되고 있는 것 같다.
박찬수 콘텐츠본부장 선거에서 여론조사 보도는 그 신뢰성 측면에서 신중해야 한다. 2012년 대선 때엔 응답률이 10%에 못 미친 여론조사도 적지 않았다. 또 여론조사가 정확하려면 표본 추출이 정확히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과거와 달리 휴대전화가 많이 보급된 상황이라 집전화와 휴대전화를 어느 비율로 섞어야 정확할지에 대해 여론조사업체들도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고, 점차 그 매뉴얼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독자의 관심 사안이므로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전달은 해야겠지만, 지나치게 무게를 두거나 비중을 크게 잡는 건 피하는 게 좋다.
지난달 6개면에 펼친 여론조사
시기·정확도상 과도한 측면
민주-신당 대립관계만 부각돼
지역마다 선거 쟁점이 뭔지
야권연대 명분은 뭔지 제시하고
군소정당 보도 균형 갖추면서
유권자들 투표장으로 이끌어야
정재권 에디터부문장 모든 언론이 선거 때만 되면 고민하는 게 여론조사 보도이다. 여론조사가 갖는 방법론적 한계뿐 아니라 유권자의 정서를 조사 결과가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혹시 유권자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은 없는지 늘 고민이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보도하지 않겠다고 공개 표명한 신문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여론조사는 손쉽게 실시할 수 있고, 객관성을 표방할 수 있고, 또 가장 영향력 있는 선거보도 방법이라서 언론마다 여론조사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제가 보기엔, 여론조사 자체보다는 선거 관련 보도 전반에 여론조사 보도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위치지을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다. 여론조사 이외의 선거 보도를 잘해야만 그 속에서 여론조사 보도도 의미를 갖는다.
신인령 선거 여론조사의 한계도 있겠지만 독자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역대 선거에서 보듯이 여론조사 결과가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다만 안철수를 민주당과 대립하는 관계로 보고 이 각도에서 접근하는 기사가 과도하게 많다. 민주당에서든 안철수 신당에서든 이와 관련된 말 한마디만 나와도 소개하는 기사가 심심찮게 실리고 있다.
■ 야권연대, ‘오직 승리’ 목표 벗어나 무엇을 위한 연대인지 제시해야
오창익 야권연대에 대한 한겨레의 접근 관점이나 태도를 보면, 지난 주말 토요판 커버스토리 기사 역시 박원순과 안철수의 협력과 경쟁 구도를 보도했다. 한겨레의 선거 보도가 지나치게 ‘구도’에 편향되고 있다. 선거구도 위주로 보도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보면 안철수 신당은 스스로 표방하는 ‘새정치’의 내용이 그닥 없어 보이는 정치세력이다. 안철수 의원이 유력한 서울시장 및 대선후보였고 차기 대선후보인 건 사실이지만 새정치의 내용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지방선거에서 내용 없는 구도와 연대를 모색했을 때 그 구도가 과연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가, 또 승리했을 경우 무엇을 위한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서울시내 19개 민주당 구청장이 있으나 지역마다 시행하는 정책이나 주민의 삶의 질 등에서 차이가 크다. 유권자가 선거구도에 따라 표를 줬는데 그 결과로 시민들이 얻은 게 과연 무엇인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연대를 꾀해 야당이 대거 이김으로써 박근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가 이뤄져 현 정권이 궤도 수정하도록 정치적 효과를 내는 걸 기대할 것인가? 특히 지방선거일수록 야권연대가 정말로 중요한지 의문이다. 예컨대 작은 지역 마을단위에서의 에너지 자립운동의 경우, 해당 인물이 이번 기초선거에 후보로 나와 지더라도 ‘의미 있는 패배’라는 가치를 지닌다. 지방선거일수록 이런 측면까지 봐야 한다.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무릇 선거에서 이기는 게 목표이지만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갖고 무엇을 하기 위해 손잡고 연대할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선거에서 승리해 과연 무엇을 할 것이냐는 대목을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가치 있는 야권연대를 하려면 우리 사회에서 현재 시민들을 가장 괴롭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거를 앞두고 야권이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를 언론에서 말해야 한다. 야권연대에 대해 한겨레가 그런 방향을 잡아주고 유도하는 쪽으로 보도해야 한다. 그래야 패배하더라도 그 가치를 붙잡고 계속 누군가 뒤이어 분투하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강희철 정치부장 안철수 신당은 새정치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호한 대목이 있다. 지난 대선 이후 그 모호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선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게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최근 들어 서울과 호남에서 지방선거 후보 문제로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과 자꾸 부닥치는 영역들이 만들어지고 민주당이 거기에 반발하면서 형성되는 현안들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고민 속에서 안철수 관련 보도가 지면에 자주 나가고 있다.
1월29일치 여론조사 보도의 경우, 설 연휴 직후에 예비후보등록이 시작되고 선관위가 주관하는 지방선거 전체 일정이 사실상 시작되므로 1월29일 시점에서 현재 상황을 독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선거 여론조사 때마다 낮은 응답률이 고민이다. 당시 조사의 응답률이 17% 정도로 나와 지면에 그대로 밝혔다. 일반적인 선거 여론조사 응답률치곤 약간 높은 편이다. 삼국지 ‘구도’ 중심으로 지방선거를 보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현재 여야가 기초선거까지 전부 중앙에서 공천하는 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치가 지방정치의 흐름에 상당한 정도로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도를 배제한 채 지역 현장만을 보도하면 전체 선거판을 보는 데 어려움이 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실장 지방자치제도의 필요성이나 한국 사회에서의 의미를 독자와 국민에게 좀더 제대로 이해시켜주는 보도가 필요하다. 내가 사는 경기도 과천은 민주당이 그렇게 강력하지도 않고 녹색당의 활동도 활발하며 정권심판론이 대세인 것도 아닌 듯하다. 시민들의 새로운 소통이란 측면에서 과천의 지역자치가 주목받아왔다. 한겨레의 지방선거 보도는 지나치게 중앙정치 프리즘에 치우쳐 있다. 중앙정치 구도에 갇히다 보니 과천의 실험이나 정의당, 녹색당 등 군소정당 보도는 한겨레 지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방선거는 지역 시민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세력이나 시도 등이 투영되는 선거판인데 이에 대한 고민이 한겨레의 기사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 군소정당 보도 실종돼…당선 무관한 기초후보 감동스토리 실어달라
후지이 다케시 거대 여야간 균형을 넘어 군소정당 보도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균형보도 관점을 취해야 한다. 중앙정치 위주의 보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앙정치의 막연한 정권심판론보다는 지방선거가 자기 삶에서 직접적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확실하게 와닿도록 보도를 해야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끌게 된다.
신인령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신의 생애를 바쳐 노력하는 지역 주민들의 삶과 이번 지방선거의 지역 자치를 연결해 보여주면 좋겠다. 정책공약 비판도 좋지만 후보의 인물 됨됨이를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다뤄보자. 당선될 가망이 별로 없는데도 녹색당 간판으로 기초단위 선거에 이름 없이 출마하는 후보 이야기에 국민들이 감동하는, 그런 선거 기사도 있을 수 있다. 선거 판세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지역과 마을 구석구석에서 그런 진실된 발언과 고심 어린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지면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영남이나 호남 농가 마을에 가보면 지역주의에서 탈피한, 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인 농민들이 꿋꿋하게 존재하고 있다.
조계완 심의위원 영호남 농민 얘기가 나왔는데, 1995년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 20여년간 지역균등발전이란 측면에서 호남지역에 지방자치제도가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정교하게 점검해보는 기사를 한번 실어보면 어떨까 싶다. 호남에서 안철수 신당 바람이 꽤 불고 있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지방자치 평가 측면에서도 지역 분권·자치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재정여건 등 때문에 오히려 영호남 불균등발전을 더 심화시킨 건 아닌지 궁금하다.
정리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