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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행정·자치

[필진] 자치단체여, 비호로에서 배우자!

등록 2006-10-12 16:21

이 마을의 명물인 비호로 고개 앞에 서 있는 필자
이 마을의 명물인 비호로 고개 앞에 서 있는 필자

 챔피언 반지를 4개나 끼고 있는 ‘여자프로농구의 강자’ 춘천 우리은행은 2005년부터 일본 홋카이도의 소도시 비호로에 전지훈련을 간다. 2005년 11월, 4월에 이어 벌써 세번째(9·28~10·12)이다. 아니 계속 이곳을 전지훈련지로 삼을 태세이다.

이곳에 꿀이라도 발라 숨겨 놓는 게 있나? 아니면 그 마을에 가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올리기 어려운 ‘징크스’라도 있나?

2005년 11월에 전지훈련을 하고 나서, 바로 열린 2006 정규리그와 챔피언전을 싹쓸이했으니 비호로 전지훈련이 효험이 있는 것도 같지만, 올 4월의 전지훈련 뒤에 열린 2006 여름리그에서는 정규리그 3위에 그쳤다. 챔피언전에 진출도 하지 못했다. 한 번은 좋은 성적, 또 한 번은 평범한 성적이니 ‘비호로 원정=좋은 성적’이라는 공식을 끌어내기도 힘들다. 그래도 우리은행은 비호로가 좋다며 다시 이곳에 캠프를 차렸다. 박명수 감독 등 우리은행 관계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시설이 좋고 싸고 지원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월의 전지훈련이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여름리그가 앞당겨 실시됐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훈련이 오히려 체력을 다지기보다는 체력을 고갈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우리은행 농구팀을 따라 일주일 정도 훈련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이곳 마을 사람을 상대로 취재를 해봤다.

비호로는 홋카이도 북동부 오호츠크해 인근에 있는 인구 2만명의 소도시이다. 비호로는 아이누족의 말로 “물이 풍부하고 넓은 곳”이라는 뜻을 가진 ‘비포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 말 뜻대로 비호로는 많은 하천과 넓고 비옥한 농지, 풍부한 일조량이 많아 감자, 사탕무우, 양파 등 농업을 주업으로 한다. 물론 물이 좋으므로, 인근에 온네유라는 유명한 온천도 있다. 일본에서 제일 큰 칼데로호인 쿳샤로호수를 내려다보는 비호로고개는 연간 117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나름대로 홋카이도에서는 이름난 관광지이다.

각설하고, 이곳이 스포츠 팀의 전지훈련지로 떠오른 것은 일본의 럭비팀이 훈련캠프를 차리면서부터이다. 1902년 영-일동맹을 맺는 등 일찍 영국의 영향을 받은 일본에 영국의 스포츠인 럭비가 일찍 따라 들어왔고, 지금도 일본에서는 럭비가 겨울스포츠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 실업럭비팀의 강호인 일본전기(NEC)가 오래전부터 여름에 이곳으로 전지훈련을 왔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지 않고 선선한 기후에 잔디구장과 체력훈련 시설이 잘 구비돼 있기 때문이다. 또 인근의 기타미 등의 도시에 다른 팀이 캠프를 차려 연습경기를 하기에도 좋다.


2000년대부터는 농구팀이 전지훈련 캠프 대열에 가담했다. 이곳에서 2000년 일본여자농구대회가 열린 것이 계기가 됐다. 지바 고지 비호로농구협회장 등이 그때 참가한 일본항공(JAL) 팀의 임영보 감독에게 이곳의 우수성을 말하며 “전지훈련을 오면 어떠냐”고 유치운동을 했다. 그 뒤 2002년부터 일본항공 팀이 매년 이곳을 찾고 있다. 우리은행과의 연결고리는 임 일본항공 감독과 박 우리은행과의 인연이다. 임 감독이 여자국가대표 감독을 하던 1996년 당시 박 감독은 그 밑에서 코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일본항공과 우리은행 팀은 자매관계이기도 하다. 비호로는 임 감독이 박 감독에게 소개해줬다. 일본항공과 우리은행은 올 봄 이곳에서 합동훈련을 하기도 했다.

이곳에 와보니, 우리은행 관계자들의 말처럼 싸고 시설이 좋고 지원이 좋다는 말이 다 맞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항공료를 빼고 15일 훈련기간 동안의 먹고 자고 훈련하는 비용이 3천만원 미만이라고 말했다. 20여명이 한국 어느 곳에 가서 훈련을 해도 이 정도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시설은 조그만 마을 치고는 환상적이었다. 모두 마을 사람을 위해 만든 시설이지만, 농구대가 두 개 설치된 체육관, 각종 체력 단련기구가 있는 2층짜리 체력훈련장, 수영장이 있고, 숙소 주변의 야산에는 풀밭과 산악 훈련장까지 잘 정비돼 있었다.

또 이곳은 농구가 '마을 스포츠라'고 불리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인구는 2만명, 그것도 매년 줄고 있지만, 초등학생부터 사회인까지 농구선수만 200명이나 된다. 초등학교가 70명, 중학교 70명, 고등학교 20명, 사회인 20명 정도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비호로고교는 홋카이도에서 4위 정도를 하는 팀인데, 키가 작으면서도 빨라 우리은행 농구팀이 연습을 하기에 아주 좋은 상대라고 우리은행 관계자는 말했다. 여기에 일본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보니 훈련 외에 신경을 쓸 것이 없다. 국가대표인 김은혜 선수는 “서울이나 도시에서 훈련하면 훈련 외의 시간에 친구와 전화하고 인터넷을 하는 일이 많아 산만한데, 이곳에서는 훈련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할 게 없으니 훈련효과도 크고 훈련시간도 많다”고 말했다.

환영회장에 서 있는 김창호 우리은행 농구단장, 오바 고지 읍장, 지바 마을농구협회장, 박명수 감독(왼쪽부터)
환영회장에 서 있는 김창호 우리은행 농구단장, 오바 고지 읍장, 지바 마을농구협회장, 박명수 감독(왼쪽부터)

이런 것만 해도 훈련 캠프지의 조건으로 손색이 없지만, 현지에서 와서 보니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읍장에서 동네 라면가게 주인까지 마음을 담아 정성껏 훈련을 도와주려는 헌신적인 자세와 풍부한 ·인정이었다. 이들은 숙박비나 훈련장 사용비는 절대 깎아주지 않지만, 같은 값이라도 선수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밥이나 반찬을 더 주고 훈련장도 훈련팀 위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연습경기 뒤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전통음식인 ‘다코야기(문어빵)’를 푸짐하게 만들어 선수단에게 대접했다. 농구협회를 중심으로 마을사람들이 합숙지원실행위원회를 만들어 자비로 환영회도 해주고, 공항 영접을 하기도 했다. 환영회 때는 머리띠 고무 베개 등 1000엔 정도의 부담가지 않는 선물을 돌려 선수들을 기쁘게 했다. 오바 고지 읍장 등 읍사무소 관계자들이 직접 환영회장이나 훈련장에 “불편한 것이 없느냐”고 챙기고, 동네 라면집 주인까지 “우리은행 팀이 이곳에 온 것을 알고 있다. 한 번 구경을 가겠다”고 반갑게 말을 걸었다.

특히 읍사무소나 농구협회 관계자들은 선수단이나 기자를 만날 때마다 “우리은행이 이 마을과 공식적인 국제교류를 하는 유일한 팀이다. 앞으로도 이곳에 계속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아마 내년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읍장이 우리은행 합숙의 정례화를 국제화의 좋은 사례로 선전해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 돈을 거의 쓰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쓰는 마을 관계자와 주민들의 보면서, 국민의 돈으로 해외여행이나 가는 지방자치단체의 외화내빈의 국제화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곳에서 열리는 마을 환영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김창호 우리은행 농구단 단장(부행장)은 “외국의 농구팀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돼 성심성의껏 지원을 해주니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지방자치 단체들도 비호로 마을 사람들의 자세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비호로 마을의 실속있는 국제화 모습을 배워라!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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