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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행정·자치

KIM MI YOUNG, 내가 블랙리스트에 있었다

등록 2007-06-07 14:23수정 2007-06-07 18:02

캐나다 몬트리올 역 풍경. 김미영 기자
캐나다 몬트리올 역 풍경. 김미영 기자
[김미영기자의 첫 해외취재 봉변기]
입국심사서 온갖 증빙에도 거짓말이라며 철창
흔하디 흔한 그 이름이 결국 외국에서도 말썽
‘김미영’. 지금 아이들은 ‘미영’이란 이름이 흔치 않지만, 내 또래 중에는 이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다. 어릴 적 한 반에 두 세 명은 있던 이름이다. 당시 나는 키도 작아, 나는 ‘미영’이 아니라 ‘작은 미영’일 때가 더 많았다. **월드에 가입한 사람만 하더라도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김미영’이 637명이나 검색된다. (사실 우리 신문사에도 ‘김미영 기자’가 둘이다. 종종 메일이나 전화가 잘못 걸려온다.)

KIM MI YOUNG. 나는 내 영문이름 때문에 캐나다에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렸다.

“캐나다 출장이라? 아~싸!” 기대반 걱정반

<한겨레>에 적을 두고 나서, 첫 해외출장 지시가 떨어졌다. “김미영씨, 캐나다 출장 갔다와.” 경제부에서 기획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는 ‘브랜드 한국에 새 숨결을’ 위해 캐나다 서크 드 솔레이유(태양의서커스)와 캐나다 서커스산업을 취재하라는 지시였다. “우와~!” ‘걱정반 기대반’인 첫 출장이다. 해외취재는 타성에 젖은 일상적인 기자 노릇에 새로운 바람과 시각을 주기도하는 ‘윤활유’이다.

‘5월27일 오후 5시25분 인천국제공항 출국-5월27일 오전 11시40분 밴쿠버공항 도착(현지시간) 뒤 오후 2시30분 몬트리올 비행기 환승-5월27일 밤 10시15분 몬트리올공항 도착.’ 이후 28일부터 31일까지 취재, 6월1일 오전 8시25분 한국으로 출발.


이게 공식적인 내 출장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이 일정은 밴쿠버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내 이름이 ‘김미영’인 탓이었다.

저쪽으로 가란다, 그런데 떡 먹다 체할 줄이야…

입국심사장. “캐나다에 왜 왔나? ” “관광차(업무 차원이라고 하면 복잡하단다. 어차피 무비자 입국 가능한 나라니까)” “알았다”. 그러면서 저쪽(사실 그때는 거기가 어딘지 몰랐다)으로 가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그렇듯, ‘누워서 떡 먹기’로 캐나다 땅을 밟을 줄 알았으니까.

난 당연히 ‘저쪽’이 환승비행기 타러 가라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캐나다 이민국(immigration)’에 가서 입국심사를 다시 받으라는 것이었다. “어~ 왜? 난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고, 입국심사가 거절될 이유도 없는데? 더구나 난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

혼자 와서 그런가…불법 취업? 위장 결혼? 불길한 예감과 왕짜증

이민국 앞. 수십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동양인, 아랍계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요즘 동양여자, 특히 혼자온 여자들은 ‘불법 취업’ 또는 ‘위장 결혼’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이 많아 자주 입국이 거부된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혼자 와서 그런가?’라고 느긋하게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입국심사 시간이 길게 소요됐다. 한 사람이 입국심사를 받는데 거의 30분쯤 소요되는 듯했다. 내 앞에 10여명의 사람들이 있어 “이러다~ 비행기 놓치기 딱 십상”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몰려오는 불안과 짜증. 하소연할 곳도 없고... 다행히 업무차 온 사람들은 다른 줄에 서라고 한다. 잽싸게 뛰어 두번째로 차례를 잡았다. “생각보다 빨리 이민국에서 재심사를 받을 수 있겠는 걸?”

캐나다 옛몬트리올 거리. 김미영 기자
캐나다 옛몬트리올 거리. 김미영 기자

‘안 되는’ 영어로 항변해도 미국도 오고 캐나다도 왔단다

캐나다 이민국.

직원 : “캐나다에 왜 왔냐?” 나 : “취재차. 나는 기자다”

직원 : “캐나다는 처음이냐?” 나 : “그렇다”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너 거짓말하지 마라. 넌 미국에도 온 적이 있고, 캐나다에도 온 적이 있다. 거짓말 하면 처벌받는 거 알고 있나?”고 물었다.

난 순간 당황했다. 외국이라곤 기껏해야 중국, 일본, 사이판, 신혼여행지인 몰디브 정도인데. 미국 비자 신청한 적도 없는데, 미국을 다녀왔다니! 순간 ‘내가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내가 헷갈리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머리를 긁적이고, 기억을 되살려봐도, “절대로 없다”

“아니다. 처음”이라고 ‘안 되는’ 영어로 항변했다. 그랬더니 “여권을 잃어버린 적 있냐?”고 재차 묻더라. “아니”라고 했더니, 심증을 확증으로 굳힌듯 “너 우리 기록에는 캐나다에 온 적이 있다. 친구들 여섯 명이 같이 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난 신분증, 명함, 취재 때문에 주고 받은 메일 등을 증거자료로 내밀고, “진짜 처음”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실실 웃으며 안으로 들어오라더니 대뜸 압수하고 철컥

그랬더니, 이 직원. 실실 웃으며, 나더러 이민국 안으로 들어오란다. 나는 ‘뭐 안에서 조사할 게 있나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따라 들어갔다. 들어갔더니, 대뜸 짐을 풀어놓으란다. 그러더니 유리창으로 된 3평 남짓한 임시 구치소(?)에 집어넣는게 아닌가? 물론 소지품(여권, 돈, 핸드폰 등이 들어있는 가방까지)을 몽땅 압수당한 채였다. 그 안에는 술에 취한 중국계 남자(중국어를 쓰더라)와 백인 여자가 있었다. ‘이들은 왜 여기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

핸드폰조차 뺏기고 가슴이 벌렁벌렁 숨이 뻑뻑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벌렁벌렁. 가슴이 콱 막혀왔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10여시간 비행기를 타고, 꿈에 부풀어 도착한 캐나다가 이런 곳이란 말인가? ‘배려’와 ‘관용’이 먼저인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철창에 갇혀야 하다니! 더구나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땅. 몇 시간 동안 이렇게 갇혀 있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핸드폰도 뺏겨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얼마나 잡혀 있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캐나다 경찰서로 이송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갇혀 있다보니, 이민국 직원들에게 ‘내 억울함’을 항변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고,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회사 쪽에 연락조차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두 번 더 인터뷰하며 분노와 두려움 떤 다섯시간

1분이 10분 같았고, 10분이 1시간 같았다. 그렇게 분노와 두려움 속에서 다섯시간이 흘렀다. 갇혀 있는 동안 2번의 인터뷰(이때는 통역을 불러주더라)를 더 했고. 다행히 이민국 직원은 “네가 기자인 것은 알겠는데. 아직 조사가 다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너를 믿고 임시 입국허가증을 내주겠다”며 다섯시간 만에 풀어줬다.

그제서야, 이름과 생일이 같은 사람이 블랙리스트에 있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 “너와 영문이름이 같고 생일이 같은 사람이 캐나다와 미국에서 불법을 저질렀다. 만약 네가 그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에 돌아가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넌 다른 나라에서도 입국이 거부되거나, 오늘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 갈 때도 입국 거부 당한다고 경고

더 기분 나빴던 건. 이민국에서 통역을 담당하는 한국인 여성. ‘한국인을 배려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피해와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포에게 오히려 군림하는 ‘어떤 사람’처럼 느껴졌다.’(나중에 몬트리올에서 통역해준 아주머니 왈 : 도대체 누구냐? 그런 사람은 따끔하게 영사관에 항의해야 한다고 조언해줬다.)

몬트리올행 마지막 비행기, 그것도 대기석만…다리가 풀렸다

하지만, 이미 환승비행기는 놓친 상황. 풀려난 시간이 오후 4시쯤이었으니. 에어캐나다 부스로 가서 비행기를 놓치게 된 사정을 전하고, 몬트리올행 좌석을 다시 잡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비행기 시간은 밤 11시30분. 몬트리올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인데, 그것도 대기석. 힘이 빠지고, 다리가 풀려 공항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의자에 앉아 멍하니 비행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만약 그 비행기에 좌석이 나지 않으면 정말 어쩌지? 늦은 밤인데, 어디로 가란 말인가? 당장 내일부터 취재 일정이 있는데...”라는 걱정뿐.

주민증 뒷번호만 확인해봐도, 넘겨준 연락처로 전화만 걸어봐도…

캐나다는 이렇게 처음부터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살기 좋은 나라’라고? “흥~”이라고 해.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제대로 조사라도 했으면(주민번호 뒷자리가 다를 테니까), 금방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나를 굳이 잡아놓을 이유도 없었잖아? 내가 분명히 “회사에 전화를 해봐라. 아니면 한국에 전화를 해봐라! 난 여기서 주한 퀘백정부 대표부 유충열 상무관을 만나기로 했으니, 그 사람한테 전화해봐라!”며 연락처까지 넘겨준 상태였다.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주민증과 운전면허증까지 제출했으니, 한국 외교통상부나 총영사관 쪽에 연락해 주민등록번호만 확인했어도, 내 신분은 금방 밝혀질 것이었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김미영’과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끝까지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안했다

더 기분 나빴던 건, 이들이 나를 풀어주면서 “더구나 이민국에서는 끝내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었다. (두고 봐라!)” 다행히 난 마지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28일 오전 7시40분. 급하게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씻은 뒤 취재업무를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주신 주한 퀘벡정부 대표부 유충열 상무관께 감사드린다.

글·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또다른 김미영이 당하면 안 되니까!

영사관에 요청했더니…

악몽은 잊혀져갔지만 불이익은 남은 숙제

영사관은 ‘그 김미영’ 실체조차 파악 못해

캐나다 몬트리올 한적한 다운타운 거리풍경. 김미영 기자
캐나다 몬트리올 한적한 다운타운 거리풍경. 김미영 기자

복잡한 서울과 달리 몬트리올은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였다. 취재일정 틈틈이 새벽과 저녁을 이용해 여기저기를 돌아보기도 했다. 다행히 숙소가 몬트리올 중심가(다운타운)에 있었다. 주로 걸었고, 지하철을 타보기도 했다. 몬트리올이 ‘캐나다 속 프랑스’이다 보니, 옛 프랑스풍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특히, 구 몬트리올) 영어와 불어가 공용어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불어를 더 많이 애용했다. 나흘간의 취재일정에 들어가면서, 첫날의 악몽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영사 “사정 알아보겠다” 답변은 친절

그러나 입국날 당한 ‘불이익’에 대해 항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주 벤쿠버총영사관과 주 몬트리올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이 받는다.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니, 다행히 영사와 통화할 수 있었다. “내가 입국하면서 5시간 억류돼 있었다. 나랑 이름과 생일이 같은 사람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했다. 외교부 통해 정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더라. 어떻게 해야 하나?” 뭐. 이렇게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정도였다.

나와 통화를 한 벤쿠버와 몬트리올의 영사는 “사정을 알아본 뒤 전화해주겠다”고 친절하게 답변해줬다.

영사관에 조회하니 이름과 생일 같은 사람 세명

5월30일. 캐나다 몬트리올 김** 영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해결 중”이라고 했다.

“영사관에서 김미영, 7******라는 주민번호로 출입국 내역을 조회하니, 이름과 생일이 같은 사람이 세명이다. 셋 중에 미국, 캐나다, 홍콩 등지를 왕래한 이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가 블랙리스트인 것 같다. 이민국 쪽에 김미영이 무슨 죄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냐고 물었더니, 공식문서로 접수하라고 해 그렇게 할 생각이다.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에 ‘김미영’씨가 겪은 일을 전했다. 해결은 그쪽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

신문사 차원에서 양국 기자협회를 통해 해결하라고?

5월31일 오후. 몬트리올총영사관에 찾아가, 김** 영사를 만났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영사관 차원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것보다는 한겨레신문사 차원에서 한국기자협회-캐나다 기자협회를 통해 하는게 더 파장이 클 것이다. 여기 이민국도 기자라면 꿈뻑한다. 국가 대 국가로 자국민이 불이익을 당한 것에 대해 직접 항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기자 신분이니까 그렇지, 만약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이 ‘기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자리에서는 ‘수긍’하는 듯 행동했지만,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결국 한국 들어가서 내가 직접 해결하라는 게 결론

그러면서 그는 “재외국민보호과에 파견나온 경찰한테 얘기를 전했다. 해결은 그쪽에서 궁극적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해결된 것도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에 가서 ‘네가 직접 재외국민보호과에서 해결하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캐나다 이민국 통역원의 자세에 대해서도 항의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 사람들은 이민국 소속 직원이다. 우리가 터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만약 그 사람이 한국인 편을 들어줬거나 했으면 잘렸을 것이다. 그래서 더 냉정하게 통역했을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오는 길도 신고하고 확인서 내고 ‘홍역’…직원은 무슨 범죄인 취급

결국 5월31일 몬트리올-벤쿠버를 거쳐 비행기를 타고 국내로 들어올 때까지 영사관 쪽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내 문제에 대한 뚜렷한 처리과정도 직접 들을 수 없었다.(영사를 만나 억울함을 호소한 정도로 위안을 삼으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다보니, 출국하면서 밴쿠버 공항에 들러(사실 환승시간도 충분치 않았는데, 난 그 와중에 캐나다 이민국에 가서 여권에 붙어 있는 임시입국허가증을 보여준 뒤 ‘나 출국한다’고 신고해야 했다) 출국사실을 통보하고, 그것도 모자라 비행기에 탈 때도 이민국 직원에게 그 출국사실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까딱하면, 한국 들어오는 비행기도 놓칠 뻔 했다.(이민국을 찾느라, 이민국에서 느긋하게 일처리는 해서...) 그것 뿐인가. 몬트리올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수속을 밟을 때는 에어캐나다 직원이 내 여권을 보더니, “무슨 범죄인인 양” 취급하는 꼴도 경험해야 했다.

돌아온 지 닷새나 지나도 아무런 연락도 없어

6월2일 오후 한국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범죄자로 오인받을 일이 없으니 진짜로 “맘이 편했다” 내 고국, 한국이 좋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한국에 온 지 닷새. 하지만 밴쿠버 총영사나 몬트리올 총영사에게서 어떤 답도 받지 못했다. 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에 대해. 심지어 그들이 정식 공문으로 “‘김미영’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를 알려달라”는 공문을 캐나다 이민국에 보냈는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영사관의 임무는 재외국민을 보호하고, 현지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자국민을 위해 발로 뛰는 것 아닌가. 기껏해야 하루에 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자 신분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전화해서 항의해도 “재수 없어 똥 밟았다고 생각하라” 또는, “지난 일이니, 잊어라” 정도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아예 영사와 통화할 기회조자 얻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국민 보호 소홀은 오래된 고질병

외교부의 무능과 재외국민 또는 자국민에 대한 보호의 책임에 소홀하다는 문제는 사실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외교부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다. 동원호를 비롯 국내 선박의 피랍문제에 외교부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논란이 일어난 것이나 지난해 <추적60분>에서 보도한 장미정씨의 문제, 탈북남민의 배에 동승해 사진을 찍으려다, 중국에서 옥고를 치렀던 한 사진가 등…. (아마 더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다.) 직접 억울함을 밝히지 않았지만, 나처럼 동명이인의 문제로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도 여럿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옥살이·불법감금·사고사 등 무책임한 처리 방송서 꼬집어

실제 지난 4월 문화방송 시사프로그램인 <뉴스 후>가 ‘영사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편에서 한국의 열악한 재외국민 보호 체계를 꼬집지 않았던가. 그때 방송에서는 탈북 난민을 돕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2003년부터 3년 11개월간 중국에서 옥살이를 한 최영훈씨와 작년 바레인 근해에서 사고사한 항공사 승무원 전혜영씨, 호주에서 불법 감금된 서재오씨 등의 사례를 통해 일부 한국 영사들의 무책임한 사건 처리 행태를 지적했다.

최씨의 경우 “수감된 동안 영사가 면회 한번 오지 않았다”고 했고, 호주에서 불법 감금된 서씨는 영사에게 도움을 청하자 오히려 “당신이 잘못했으니 감금당하지 않았겠느냐”며 외면당했다.

베풂이 아닌 책임이자 의무

어쨌든 나는 ‘김미영’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어 가는지 끝까지 지켜볼 참이다. 나뿐 아니라 또다른 ‘김미영(이름과 생일이 같은 사람이 3명이라고 했으니)’이 당할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더이상 나같은 봉변을 당하는 한국인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다. 영사의 업무 가운데 가장 우선인 것이 ‘자국민 보호’다. 자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베풂’이 아니라, ‘책임’이자 ‘의무’이니까 말이다.

글·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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