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 역 풍경. 김미영 기자
[김미영기자의 첫 해외취재 봉변기]
입국심사서 온갖 증빙에도 거짓말이라며 철창
흔하디 흔한 그 이름이 결국 외국에서도 말썽
입국심사서 온갖 증빙에도 거짓말이라며 철창
흔하디 흔한 그 이름이 결국 외국에서도 말썽
‘김미영’. 지금 아이들은 ‘미영’이란 이름이 흔치 않지만, 내 또래 중에는 이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다. 어릴 적 한 반에 두 세 명은 있던 이름이다. 당시 나는 키도 작아, 나는 ‘미영’이 아니라 ‘작은 미영’일 때가 더 많았다. **월드에 가입한 사람만 하더라도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김미영’이 637명이나 검색된다. (사실 우리 신문사에도 ‘김미영 기자’가 둘이다. 종종 메일이나 전화가 잘못 걸려온다.)
KIM MI YOUNG. 나는 내 영문이름 때문에 캐나다에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렸다.
“캐나다 출장이라? 아~싸!” 기대반 걱정반
<한겨레>에 적을 두고 나서, 첫 해외출장 지시가 떨어졌다. “김미영씨, 캐나다 출장 갔다와.” 경제부에서 기획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는 ‘브랜드 한국에 새 숨결을’ 위해 캐나다 서크 드 솔레이유(태양의서커스)와 캐나다 서커스산업을 취재하라는 지시였다. “우와~!” ‘걱정반 기대반’인 첫 출장이다. 해외취재는 타성에 젖은 일상적인 기자 노릇에 새로운 바람과 시각을 주기도하는 ‘윤활유’이다.
‘5월27일 오후 5시25분 인천국제공항 출국-5월27일 오전 11시40분 밴쿠버공항 도착(현지시간) 뒤 오후 2시30분 몬트리올 비행기 환승-5월27일 밤 10시15분 몬트리올공항 도착.’ 이후 28일부터 31일까지 취재, 6월1일 오전 8시25분 한국으로 출발.
이게 공식적인 내 출장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이 일정은 밴쿠버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내 이름이 ‘김미영’인 탓이었다. 저쪽으로 가란다, 그런데 떡 먹다 체할 줄이야… 입국심사장. “캐나다에 왜 왔나? ” “관광차(업무 차원이라고 하면 복잡하단다. 어차피 무비자 입국 가능한 나라니까)” “알았다”. 그러면서 저쪽(사실 그때는 거기가 어딘지 몰랐다)으로 가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그렇듯, ‘누워서 떡 먹기’로 캐나다 땅을 밟을 줄 알았으니까. 난 당연히 ‘저쪽’이 환승비행기 타러 가라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캐나다 이민국(immigration)’에 가서 입국심사를 다시 받으라는 것이었다. “어~ 왜? 난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고, 입국심사가 거절될 이유도 없는데? 더구나 난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 혼자 와서 그런가…불법 취업? 위장 결혼? 불길한 예감과 왕짜증 이민국 앞. 수십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동양인, 아랍계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요즘 동양여자, 특히 혼자온 여자들은 ‘불법 취업’ 또는 ‘위장 결혼’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이 많아 자주 입국이 거부된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혼자 와서 그런가?’라고 느긋하게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입국심사 시간이 길게 소요됐다. 한 사람이 입국심사를 받는데 거의 30분쯤 소요되는 듯했다. 내 앞에 10여명의 사람들이 있어 “이러다~ 비행기 놓치기 딱 십상”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몰려오는 불안과 짜증. 하소연할 곳도 없고... 다행히 업무차 온 사람들은 다른 줄에 서라고 한다. 잽싸게 뛰어 두번째로 차례를 잡았다. “생각보다 빨리 이민국에서 재심사를 받을 수 있겠는 걸?”
‘안 되는’ 영어로 항변해도 미국도 오고 캐나다도 왔단다
캐나다 이민국.
직원 : “캐나다에 왜 왔냐?” 나 : “취재차. 나는 기자다”
직원 : “캐나다는 처음이냐?” 나 : “그렇다”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너 거짓말하지 마라. 넌 미국에도 온 적이 있고, 캐나다에도 온 적이 있다. 거짓말 하면 처벌받는 거 알고 있나?”고 물었다.
난 순간 당황했다. 외국이라곤 기껏해야 중국, 일본, 사이판, 신혼여행지인 몰디브 정도인데. 미국 비자 신청한 적도 없는데, 미국을 다녀왔다니! 순간 ‘내가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내가 헷갈리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머리를 긁적이고, 기억을 되살려봐도, “절대로 없다”
“아니다. 처음”이라고 ‘안 되는’ 영어로 항변했다. 그랬더니 “여권을 잃어버린 적 있냐?”고 재차 묻더라. “아니”라고 했더니, 심증을 확증으로 굳힌듯 “너 우리 기록에는 캐나다에 온 적이 있다. 친구들 여섯 명이 같이 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난 신분증, 명함, 취재 때문에 주고 받은 메일 등을 증거자료로 내밀고, “진짜 처음”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실실 웃으며 안으로 들어오라더니 대뜸 압수하고 철컥
그랬더니, 이 직원. 실실 웃으며, 나더러 이민국 안으로 들어오란다. 나는 ‘뭐 안에서 조사할 게 있나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따라 들어갔다. 들어갔더니, 대뜸 짐을 풀어놓으란다. 그러더니 유리창으로 된 3평 남짓한 임시 구치소(?)에 집어넣는게 아닌가? 물론 소지품(여권, 돈, 핸드폰 등이 들어있는 가방까지)을 몽땅 압수당한 채였다. 그 안에는 술에 취한 중국계 남자(중국어를 쓰더라)와 백인 여자가 있었다. ‘이들은 왜 여기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
핸드폰조차 뺏기고 가슴이 벌렁벌렁 숨이 뻑뻑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벌렁벌렁. 가슴이 콱 막혀왔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10여시간 비행기를 타고, 꿈에 부풀어 도착한 캐나다가 이런 곳이란 말인가? ‘배려’와 ‘관용’이 먼저인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철창에 갇혀야 하다니! 더구나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땅. 몇 시간 동안 이렇게 갇혀 있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핸드폰도 뺏겨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얼마나 잡혀 있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캐나다 경찰서로 이송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갇혀 있다보니, 이민국 직원들에게 ‘내 억울함’을 항변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고,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회사 쪽에 연락조차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두 번 더 인터뷰하며 분노와 두려움 떤 다섯시간
1분이 10분 같았고, 10분이 1시간 같았다. 그렇게 분노와 두려움 속에서 다섯시간이 흘렀다. 갇혀 있는 동안 2번의 인터뷰(이때는 통역을 불러주더라)를 더 했고. 다행히 이민국 직원은 “네가 기자인 것은 알겠는데. 아직 조사가 다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너를 믿고 임시 입국허가증을 내주겠다”며 다섯시간 만에 풀어줬다.
그제서야, 이름과 생일이 같은 사람이 블랙리스트에 있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 “너와 영문이름이 같고 생일이 같은 사람이 캐나다와 미국에서 불법을 저질렀다. 만약 네가 그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에 돌아가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넌 다른 나라에서도 입국이 거부되거나, 오늘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 갈 때도 입국 거부 당한다고 경고
더 기분 나빴던 건. 이민국에서 통역을 담당하는 한국인 여성. ‘한국인을 배려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피해와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포에게 오히려 군림하는 ‘어떤 사람’처럼 느껴졌다.’(나중에 몬트리올에서 통역해준 아주머니 왈 : 도대체 누구냐? 그런 사람은 따끔하게 영사관에 항의해야 한다고 조언해줬다.)
몬트리올행 마지막 비행기, 그것도 대기석만…다리가 풀렸다
하지만, 이미 환승비행기는 놓친 상황. 풀려난 시간이 오후 4시쯤이었으니. 에어캐나다 부스로 가서 비행기를 놓치게 된 사정을 전하고, 몬트리올행 좌석을 다시 잡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비행기 시간은 밤 11시30분. 몬트리올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인데, 그것도 대기석. 힘이 빠지고, 다리가 풀려 공항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의자에 앉아 멍하니 비행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만약 그 비행기에 좌석이 나지 않으면 정말 어쩌지? 늦은 밤인데, 어디로 가란 말인가? 당장 내일부터 취재 일정이 있는데...”라는 걱정뿐.
주민증 뒷번호만 확인해봐도, 넘겨준 연락처로 전화만 걸어봐도…
캐나다는 이렇게 처음부터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살기 좋은 나라’라고? “흥~”이라고 해.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제대로 조사라도 했으면(주민번호 뒷자리가 다를 테니까), 금방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나를 굳이 잡아놓을 이유도 없었잖아? 내가 분명히 “회사에 전화를 해봐라. 아니면 한국에 전화를 해봐라! 난 여기서 주한 퀘백정부 대표부 유충열 상무관을 만나기로 했으니, 그 사람한테 전화해봐라!”며 연락처까지 넘겨준 상태였다.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주민증과 운전면허증까지 제출했으니, 한국 외교통상부나 총영사관 쪽에 연락해 주민등록번호만 확인했어도, 내 신분은 금방 밝혀질 것이었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김미영’과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끝까지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안했다
더 기분 나빴던 건, 이들이 나를 풀어주면서 “더구나 이민국에서는 끝내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었다. (두고 봐라!)” 다행히 난 마지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28일 오전 7시40분. 급하게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씻은 뒤 취재업무를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주신 주한 퀘벡정부 대표부 유충열 상무관께 감사드린다.
글·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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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공식적인 내 출장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이 일정은 밴쿠버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내 이름이 ‘김미영’인 탓이었다. 저쪽으로 가란다, 그런데 떡 먹다 체할 줄이야… 입국심사장. “캐나다에 왜 왔나? ” “관광차(업무 차원이라고 하면 복잡하단다. 어차피 무비자 입국 가능한 나라니까)” “알았다”. 그러면서 저쪽(사실 그때는 거기가 어딘지 몰랐다)으로 가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그렇듯, ‘누워서 떡 먹기’로 캐나다 땅을 밟을 줄 알았으니까. 난 당연히 ‘저쪽’이 환승비행기 타러 가라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캐나다 이민국(immigration)’에 가서 입국심사를 다시 받으라는 것이었다. “어~ 왜? 난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고, 입국심사가 거절될 이유도 없는데? 더구나 난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 혼자 와서 그런가…불법 취업? 위장 결혼? 불길한 예감과 왕짜증 이민국 앞. 수십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동양인, 아랍계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요즘 동양여자, 특히 혼자온 여자들은 ‘불법 취업’ 또는 ‘위장 결혼’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이 많아 자주 입국이 거부된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혼자 와서 그런가?’라고 느긋하게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입국심사 시간이 길게 소요됐다. 한 사람이 입국심사를 받는데 거의 30분쯤 소요되는 듯했다. 내 앞에 10여명의 사람들이 있어 “이러다~ 비행기 놓치기 딱 십상”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몰려오는 불안과 짜증. 하소연할 곳도 없고... 다행히 업무차 온 사람들은 다른 줄에 서라고 한다. 잽싸게 뛰어 두번째로 차례를 잡았다. “생각보다 빨리 이민국에서 재심사를 받을 수 있겠는 걸?”
캐나다 옛몬트리올 거리.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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