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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행정·자치

“연구기관장들까지 줄서기 강요, 정치보복 악순환 후환 남길 것”

등록 2008-04-29 19:22수정 2008-04-29 22:21

항의 사표 낸 이종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항의 사표 낸 이종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대운하 실익없다 보고한 원장 궁지에
정권 바뀌어도 연구 독립성 보장해야”
항의 사표 낸 이종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국책연구기관은 정권의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 가능한 정책을 제시하고, 국가경제 운영이 기우뚱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안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독립성과 객관성, 양심의 자유, 중립적 연구 풍토가 절실하지요. 새 정부와 통치 철학에 차이가 난다고 해서 국책연구기관장들을 일거에 물러나게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어리석은 행태입니다.”

잔여 임기 1년을 남기고 지난 28일 오후 국무총리실에 사표를 제출한 이종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사진)은 최근 정부의 처사를 “한마디로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정치보복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23개 국책연구기관의 원장들을 인선하는 기구이다.

-지난 22일 조중표 국무총리실장이 이 이사장을 찾아갔던 것으로 안다. 사퇴 결심은 언제 했나?

“28일 오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민간 선임직 이사들을 긴급히 소집해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조중표 실장의 요청(연구원장들의 사표를 대신 받아 달라는 내용) 등 경과를 보고했다. 그리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연구원장들의 사표를 독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만큼, 내가 직접 총리실에 사표를 내고 이사장직에서 면직시켜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후에 곧바로 사표를 냈다. 명예롭게 임기를 마치지 못해 착잡하다. 산하 연구원장들을 끝까지 보호해 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당시 조 실장이 새 정부가 재신임을 묻기 위해 사표를 받겠다고 했는데, 어떤 기준으로 재신임하겠다고 했나?

“정부가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선별하겠다는 것인데, 재선임 기준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러나 임기제 공직자를 두고 선별 심사한다는 발상 자체가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 결국 자의적으로 하겠다는 것인데, 옳지 않다.”

-학계에선 국책연구기관장들의 일괄 사표 종용이 ‘학문의 다양성’을 해친다고 반발한다.


“지난 4일 (총리실의 이번 종용과 별개로) 최병선 국토연구원장이 사퇴할 때 내가 매우 말렸다. 그는 지난가을 국정감사 때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대운하 공약은 경제적 실익이 없다’는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한나라당 의원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당한 바 있다. 새 정부가 임명하는 후임 국토연구원장은 ‘대운하는 실익이 있으니 무조건 찬성해야 한다’고 하면 칭찬 듣겠지. 하지만 정책연구의 일관성과 객관성은 변할 수 없는 대원칙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책연구기관장들의 일괄 물갈이는 정권 교체기마다 줄서기를 강요하고, 정책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옛 정권 인사를 솎아내려는 ‘정치적 고려’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국책연구기관장 일괄 사표 압력에 앞서 최근 공공기관 기관장의 사표 종용이 있었다.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 정치사를 20년 전으로 퇴보시키는 ‘정치보복’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본다. 최근 20년간 역대 어느 정권교체기에도 이런 사례는 없었다. 국책연구기관의 장은 더욱더 중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생각과 정파가 다른 사람이 공존하고 서로 용인하는 게 민주주의다. 진보와 보수도 공존해야 하고 …. 그런데 이제 ‘정치보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이 정부는 후환을 남길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 쪽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권이 바뀌어도 정부는 항상 법과 원칙의 준수라는 큰 틀에서 움직여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장에 대해서도 아량과 인내심을 가지고 안고 가야 한다. 그래야 학문의 다양성과 정책의 자율성,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고 성실하고 객관적인 연구 풍토도 보장될 수 있다.”

-이 이사장은 국책연구기관장의 임면권자이다. 이사장이 궐위되면 앞으로 연구원장들이 낸 사표의 후속 처리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의 임면권은 총리한테, 국책연구기관장의 임면권은 이사장한테 있다. 내가 사표를 냈으니 이사장 궐위 상태에서 조만간 민간 이사 가운데 가장 연장자가 이사장 대행으로 선임될 것이다.”

명지대 교수(사회학)인 이 이사장은 2006년 4월, 3년 임기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 이사장은 2002년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참여센터 본부장을 역임했고,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최익림 기자 choi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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