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땐 ‘잠정중단→중단’ 수정
현정부 “손댈 수 없다” 태도와 배치
현정부 “손댈 수 없다” 태도와 배치
정부가 지난 2006년 3월 ‘3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고시할 때, 입안예고 기간에 국내 한우단체가 제기한 의견을 받아들여 미국과 추가협의하고 문제 조항을 수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난달 18일 타결한 새 수입 위생조건의 독소조항을 수정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대해, 정부가 “미국과 합의하고 서명까지 한 만큼 수입 위생조건 자체를 손댈 수는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과 배치되는 사례다.
<한겨레>가 27일 2006년 1월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합의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입안예고안과 실제 확정 고시안을 비교한 결과, 광우병 등이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가 취할 조처를 규정해 놓은 수입 위생조건 21조의 표현이 서로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입안예고안에는 “한국 정부는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수출 쇠고기의 수입을 잠정 중단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확정 고시안에는 “한국 정부는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수출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바뀌었다. ‘잠정 중단’을 ‘중단’으로 고쳐 한국 정부의 ‘검역주권’을 더 강화시킨 것이다. 당시 협상에 참가했던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입안예고 기간에 한우협회에서 잠정 중단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고치라는 요구가 있어, 고시 확정 전에 주한 미대사관 등을 통해 미국 쪽 양해를 얻어 관련 문구를 고친 뒤 고시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날짜에 맞추려 시간에 쫓겨 급하게 한-미 쇠고기 협상을 타결했다는 정황도 더욱 많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06년 쇠고기 협상에선 한글과 영문 합의문을 모두 작성해 양쪽 대표가 확인 뒤 서명을 하고 협상 타결을 발표한 반면, 지난달 18일 협상 타결 때는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 위생조건’ 영문본에만 양쪽 협상 대표가 서명을 했다. 수입 위생조건 한글본과 ‘쇠고기에 관한 한-미 협의 합의요록’은 미처 만들 시간이 없어 서명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글본과 합의요록의 문구를 확정한 뒤 서명하고 문서를 교환한 것은 협상 타결 발표 2주 뒤인 지난 2일이다. 더구나 영문본과 2주 뒤 서명한 한글본·합의요록은 서명 문구도 다르다.
새 수입 위생조건의 입안예고도 한글본 합의안이 나오기 전인 지난달 22일 시작됐다. 영문본 수입 위생조건을 번역한 뒤 미국 쪽과 문구 조정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안예고를 한 셈이다. 이 때문에 입안예고안과 나중에 나온 수입 위생조건 한글본 합의안의 핵심 문구가 서로 다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농식품부 내부에서도 한-미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진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산하 농식품부지부장은 지난 26일 조합 게시판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은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즉각 재협상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정부는 고시를 무기한 연기하고 재협상에 임할 것을 밝히고 미국과 즉각 재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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