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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행정·자치

독소조항 놔둔 채 미 수출업자 자율규제에 ‘목매’

등록 2008-06-04 08:04수정 2008-06-04 10:58

정부, 30개월이상 수입않기 또다른 ‘꼼수’
강제력 없고 한시적…민심 달래는데 역부족
농업협정 통해 금지, 국제통상 규범에 ‘어긋’
정부가 미국과 재협상은 피하면서도 30개월이 넘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 ‘묘수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정부는 2일 범국민적인 저항에 부닥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에 대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고시의 관보 게재를 유보하면서, “재협상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카드는 결국 미국 쇠고기 수출업체들에 ‘선처’를 호소하는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은 3일 오전 브리핑에서 “미국에 30개월령 이상 된 쇠고기 수출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고, 이에 대한 답신이 올 때까지 수입 위생조건 장관 고시를 유보하고 검역도 시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가 사실상 재협상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정부의 방침은 이날 오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의 면담 뒤 명쾌해졌다.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명환 장관은 미국 업계가 자발적으로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출을 자제하는 등 통상마찰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쇠고기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미국 쪽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즉 재협상 대신 ‘수출 자율규제’(VER) 방식을 통해 미국 쪽이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수출하지 않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뜻이다. 수출 자율규제는 교역 상대국의 일방적 수입제한 조처를 피하기 위해 수출국이 알아서 수출의 수량이나 가격, 품질 등을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이처럼 미국 수출업체들의 선처에 호소하기로 한 것은 재협상을 통해 연령 제한 없이 수입을 허용하기로 한 수입 위생조건의 관련 조항(부칙 2조)을 삭제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월령 제한 폐지’는 미국이 지난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얻은 뒤 한국 등 주요 쇠고기 수입국들에 요구해 온 핵심 사항이다. 오히려 미국은 월령 제한을 푼 한국과 협상 내용을 일본·중국·대만 등 앞으로 협상을 할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정부간 재협상은 쉽지 않다”며 “미국과 한국 양쪽 수출-수입업체들이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거래하지 않기로) 합의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카길이나 타이슨 푸드 등 대형 육류업체들이 한국에 수출하는 쇠고기에 대해서는 최대 120일 동안 월령 표시를 확실하게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화답해 국내 수입업체들이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겠다’고 자율결의를 하면, 사실상 30개월 이상된 미국산 쇠고기는 들어올 수 없다. 다만, 120일 동안의 한시적인 효과뿐이고, 자율 결의에 참여하지 않는 수많은 다른 수출입 업체들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 이런 방안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 불안을 일시적으로 무마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통상전문가들도 수출 자율규제는 일종의 위장된 무역제한 조처로, 국제통상 규범에 어긋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수출 자율규제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전에 존재했던 과거의 유물”이라며 “현재는 농업협정 4조 2항을 통해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수출 자율규제를 통해 30개월령 이상 된 쇠고기 수입 제한 조처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한국으로 수출하는 쇠고기가 30개월령 이하임을 미국 정부가 증명하는 별도의 수출증명(EV) 프로그램을 운용해야 하고, 30개월령 이상 된 쇠고기가 수입검역 과정에서 적발될 경우 제재 조처 등을 수입 위생조건에 담아야 한다.

그 때문에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수출 자율규제와 같은 ‘땜질 처방’ 말고, 정공법으로 미국과 재협상을 해 수입 위생조건의 문제 조항들은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이외에도 △광우병 발생 때 수입 중단조처 불가 △내장 등 부산물 수입 허용 △수출 작업장 승인권 포기 등 상당수 독소조항들이 그대로 있는 만큼, 재협상을 통한 수입 위생조건 전면 개정 이외에는 ‘쇠고기 사태’로 끓어오른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힐 방법이 없다고 보고 있다.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미 ‘30개월 이상 수입금지’ 사실상 거부
▶우왕좌왕 정부, 발표도 해명도 ‘흐릿’
▶청와대 100일 고개떨군 대통령
▶‘30개월’ 급한불 끈뒤 국민과 대화, 운하는 ‘입단속’
▶이대통령 취임 100일째 ‘박수칠 때 떠나라’
▶“재협상 말고는 사기극” 72시간 철야집회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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