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통상 전문가들의 제언
한-미 FTA 선례 있어…외교적 결례 안돼
국민건강 문제…미 정무판단후 수용할 것
한-미 FTA 선례 있어…외교적 결례 안돼
국민건강 문제…미 정무판단후 수용할 것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 외교·통상 전문가들은 ‘재협상’이 불가피할뿐더러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외교안보연구원의 한 통상분야 연구자는 4일 “재협상은 불가능하지 않다”며, 한-미 양국 정부가 지난해 4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하고도 미국 쪽 요청으로 그해 6월 노동·환경 등 7개 분야에서 사실상 재협상을 벌인 것을 그 선례로 들었다. 그는 또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자동차 산업과 관련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을 요구하는 점도 외교적으로 재협상이 문제가 안 된다는 선례라고 덧붙였다. 이 연구자는 한국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면 미국 정부도 정무적 판단을 거쳐 ‘실질적 재협상’을 수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외교통상부의 한 전직 고위 관리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전직 고위관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한테 수입 개방을 정상 차원에서 약속해 벌어진 일이므로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푸는 게 현실적”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 문제는 실무협상팀 차원에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색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송 전 장관은 “외교 협상은 각국의 국내 절차를 모두 마쳐야 완료되는 것”이라며 “이 점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아직 합의의 과정이 종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이란 용어를 쓸 것도 없이 서로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내용을 수정·보완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쪽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부정적 영향 △한국 정부의 국제적 신뢰 훼손 등의 이유를 들어 ‘재협상은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외교안보연구원의 연구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양국 의회 비준은 미국 쪽 사정을 보면 어차피 내년에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나 가능한 일”이라며 “미국 정부의 수용 여부와 별개로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는 게 꼭 나쁜 협상 전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정책실장은 “한국 정부가 추가 요구를 하면 미국이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쇠고기 문제는 통상 협상이 아닌 위생검역에 관한 것이고 설사 한국 정부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한다고 해도, 한국민의 건강을 고려해 하는 조처라 미국 쪽이 반대급부를 요구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교안보 분야 전직 핵심 관계자도 “이미 수입하고 있는 걸 중단하는 게 아니므로 한국 정부가 재협상을 요청하더라도 미국 쪽이 다른 사안과 연계해 경제 보복을 가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내다봤다.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수입위생조건은 국민 건강과 관련한 기술 협의이므로 다른 일반 공산품 등과 연계시켜 협상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외교안보 분야의 다른 한 전직 관계자는 “통상 문제에 관한 한 의회와 이익집단의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적 특성과 임박한 대선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가 재협상을 요청하더라도 미국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재협상 성사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 관계자는 “그렇더라도 국내의 들끓는 민심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는 재협상을 요청하고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렬을 선언해 합의를 파기하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훈 김수헌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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