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에서 강재섭 대표와 만난 뒤, 민주당 의원들이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막 앞을 지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미 정부가 받아 들일지 타진했다 거절 당해
정부, ‘거절’ 알면서 새카드인양 무책임 발표
정부, ‘거절’ 알면서 새카드인양 무책임 발표
지난 3일 정부가 쇠고기 문제 해법으로 제시한 ‘수출 자율규제’(VER) 방안은 이미 보름 전 한나라당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에게 제안했다가 거부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지난달 20일 버시바우 대사를 만나 30개월령 이상 쇠고기가 한국에 들어오지 않도록 △수출 자율규제 △한국 수출용 제품에 월령 표기 △월령 표기 시행 도축장만 수출용 지정 등의 조처를 거론하며 미국 정부가 해 줄 수 있는지를 타진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당시 버시바우 대사는 쇠고기 문제 협조를 요청하고자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을 방문했으며, 안상수 원내대표, 이한구 정책위의장, 조윤선 대변인, 차명진·심재철·홍문표 의원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러나 버시바우 대사는 “민간업자들끼리의 계약을 어떻게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느냐. 또한 우리나라 도축장에선 월령 표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시간 이상 진행된 이날 만남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버시바우 대사는 ‘과학적 근거’를 놓고 입씨름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농업정책에 밝은 한 의원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미국이 소의 치아만 보고 월령을 감별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미국식 치아감별법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이 100곳이 넘는 나라에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별 문제가 없다. 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없다면 문제삼을 수 없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 쪽의 제안들을 모두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시바우 대사가 워낙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한 의원은 화를 내며 “나도 미국에서 살아본 사람이다. 어떻게 계속 안 된다고만 하느냐”며 따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제안들이 모두 퇴짜를 맞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대만·일본 수출용으로 20개월령 미만 소만 다루는 도축장과 한국 업체들이 계약을 맺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버시바우 대사는 “정부가 개입할 수는 없지만 사인간의 계약을 그렇게 맺는 것은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조윤선 대변인이 전했다.
당내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특별위원을 맡았던 한 의원은 이를 두고 “수출 자율규제 방안은 민간업자들끼리의 계약이기 때문에 공적인 구속력은 없다”며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 쇠고기 협상이 난항을 겪자 이런저런 대안 중 하나로 이미 논의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만약 정부가 수출 자율규제로 쇠고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면, 민간과 정부 모두 미국 쪽과 물밑접촉을 통해 후속조처까지 매듭지은 뒤 공개해야 했다”며 “어떻게 미국이 뻔히 거절할 것을 알면서 주무 장관이 무책임하게 발표부터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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