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서 불신, 리더십 상실…위기 확대 재생산
전문가 “바꾸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이 더 문제”
전문가 “바꾸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이 더 문제”
한국 경제가 1997년 ‘환란’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촉발됐음을 강조하면서 ‘대외 여건’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의 리더십 상실과 맞물리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모습이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 국채의 부도위험지수가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심지어 타이보다도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은 ‘내부의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에 비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과도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결국 현 경제팀의 정책 실패 탓”이라며 “강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 교체가 위기 해소의 실마리”라고 입을 모은다.
■ 리더십 상실이 위기 불러
강 장관은 취임 뒤 오락가락하는 정책 기조에다 잦은 말실수 등으로 이제 시장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을 넘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강 장관을 소재로 한 농담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시장에선 강 장관의 상황 인식과 정책 대응 능력에 대한 불신이 퍼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문제다. 강 장관은 지난 13일 미국 방문 도중 “우리나라 은행들이 그 정도로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라며 정부의 지급보증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강 장관의 이런 발언이 있은 지 엿새 만인 19일 정부는 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해 지급보증을 발표했다.
뒤늦게 경제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과도하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문제다. 강 장관은 지난 9월19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외환보유액과 금융기관 건전성을 고려하면 무리 없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14일 미국 뉴욕에서 국제금융 전문가들로부터 매우 부정적인 전망을 듣고 온 뒤에는 “내년에 4% 성장이 쉽지 않다”거나 “지금은 대외 여건이 좋지 않아 경우에 따라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식으로 180도 다른 상황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으로부터 철저히 불신과 외면을 받고 있는데도 강 장관 스스로는 줄곧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언론이나 ‘시장의 오해’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 때문에 재정부 안에서도 “강 장관이 너무 거칠게 자신의 생각이나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 경제팀 교체가 위기 극복 실마리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정책을 무력화시킨다. 이종우 에이치엠시(HMC) 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 경제팀으로는 시장을 설득하기가 힘들고,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비용만 더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강 장관의 국내 리더십 상실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이 홀대받는 상황과도 연결된다. 한 시중은행장은 “현재 한국 금융회사들은 브라질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곳에서 통화 스와프 중계 방식으로 겨우 달러를 구하고 있다”며 “최근 정부가 외신이나 일부 국제기구들과 불필요한 다툼을 벌이며 국제 금융시장에선 강 장관의 위기대처 능력은 물론이고 도덕적 권위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신뢰의 회복을 위해선 경제팀의 전면 재구성이 시급한데도 이명박 대통령의 강 장관에 대한 신뢰는 요지부동이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는 “강 장관을 바꾸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도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팀 교체가 여전히 적절한 카드”라며 “대통령으로서는 나라가 결딴나는 것보다는 강 장관을 경질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팀 교체와 함께 정책 방향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홍종학 교수는 “지금은 외환시장을 지킬지 주식시장을 지킬지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정부는 주식시장 부양보다는 서민과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외환시장을 지키는 쪽으로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경제 수장을 바꾼 뒤에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하고 특히 원화 유동성 위기를 막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관치금융을 잘할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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