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직 일괄사표’ 부작용 우려
국정방향 설득 못하고 무리한 방법 동원해 강제
전문성 대신 ‘줄서기’ 부작용…리더십으로 풀어야
국정방향 설득 못하고 무리한 방법 동원해 강제
전문성 대신 ‘줄서기’ 부작용…리더십으로 풀어야
정부가 교육과학기술부, 국세청 1급 공무원 10명한테 일괄사표를 받아내는 등 고위공직자 물갈이에 나선 것을 두고 공직사회 안팎에서 우려가 번지고 있다. 일괄사표 징구 행태가 전례를 찾기 어려운 강압적 방식이어서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7일 행정학계와 공무원들의 견해 등을 종합하면, 이번 처사는 정책적 사고의 다양성을 억누르고 획일·무조건적 충성문화를 강화할 우려가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개별 공무원의 잘잘못 평가가 아니라, 정권 핵심부와 뜻이 맞지 않는다며 일괄책임을 묻는 데 따른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황성돈 한국외국어대 교수(행정학)는 “정부의 물갈이 움직임은 코드 인사로 귀결될 것”이라며 “전문성을 무시하고 정치·정파적 이해로 인사를 하면 공직사회에 윗사람 눈치보기, 줄서기가 나타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이 경우 공무원들이 정권과 이념을 달리하는 정책을 피하면서, 심도있는 정책논의는 줄어들고 눈치보기만 남을 수 있다”며 정책논의의 획일화 가능성을 우려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국장급 공무원도 “전임 정부에서 열심히 일해서 승진했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대우한다면 공무원들의 정권 눈치보기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라일하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은 “이번 사태는 정치권력이 전문화된 행정 공무원에게 줄서기를 강요하는 것”이라며 “일괄사표를 받는 것은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무원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권 핵심세력이 자신들의 국정철학을 공직사회에 전파해 설득하지 못하고, 강제적 방식을 동원하는 데 따른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공무원 연찬회나 토론 등을 통해 국정방향을 공유하고 ‘동의’를 형성하는 노력이 부족한 가운데 무리한 방식이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정권이 바뀐 상태에서 특히 새 정부의 국정방향으로 관료들을 이끌고 나가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며 “그런 면에서 이런 문제는 (직업 공무원 물갈이가 아닌) 장관의 리더십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최고위원은 “관두더라도 장관들이 먼저 관둬야지 1급들을 이런 식으로 바꿔서는 공무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에 따라 신분보장이 되어 있는 1급 공무원들한테 일괄사표를 내라고 한 점도, 평가시스템 등 제도적 절차를 무시한 것으로 지적된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쓸모없는 관료들이 있다면 도태시켜야 하는 것은 맞지만, 방법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에는 인사와 관련해 정해진 기준과 절차가 있고, 이 정부도 그동안 모니터링을 다 해 온 것으로 안다”며 “제도에 따라서 평가를 해 쓸모없다고 판단되면 조용히 ‘관두시라’고 하면 될 일을, 마치 ‘전기충격’ 주듯이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과거 1급 공무원들에게 무보직 발령 등의 방식으로 자연 퇴출시켰던 사례를 들며, “지금과 같은 방식은 정치권이 행정권에 개입하는 것으로, 공무원 사회를 완전히 경직시키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준범 이재명 김기태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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