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책까지 토목공사 하듯 ‘빨리빨리’
4대강·세종시·언론법·행정구역 통합 정책 혼선
4대강·세종시·언론법·행정구역 통합 정책 혼선
절차와 합의보다 ‘빨리빨리’를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의 ‘속도전’식 일처리 방식이 격렬한 갈등을 부르면서 주요 정책들의 혼선과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애초 통합대상 지역을 6곳으로 발표했다가 결국 1곳밖에 안 남게 된 행정구역 통합 문제, 예비타당성조사도 생략하고 국회가 예산 심의도 하기 전에 착공에 들어간 4대강 사업, ‘백년대계’를 외치면서도 민관합동기구 출범 40여일 만에 최종안을 발표하겠다는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등 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잇따라 정치권과 이해관계 지역, 시민단체들의 갈등을 유발하면서 혼란 속으로 치닫고 있다. 정책 추진 과정이 마치 공사기간을 맞추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건설현장을 방불케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졸속으로 진행된 대표적인 실패작은 행정구역 통합 문제다. 정부는 지난 9월말 전국 18개 지역 46개 시·군으로부터 신청서를 받아 여론조사를 거친 뒤 지난 10일 반수가 넘는 6개 지역을 발표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만인 12일 선거구 조정 문제에 걸려 2곳을 제외한다고 번복했다. 그나마 나머지 4곳 중에서도 마산·창원·진해 1곳만 빼면 시·군마다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통합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여론조사의 표본 선정, 유효투표수 계산방법, 위법 공방이 오가며 행정구역 통합 정책의 신뢰성에도 생채기가 났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은 시행령 개정으로 예비타당성조사도 받지 않은 채 이달 초 첫 삽을 떴다. 야당이 반발하며 4대강 사업의 예산 심의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낙동강에 불도저를 댔다. 세종시 건설의 경우에도 지난 16일에야 첫 민관합동회의가 열렸지만 올해 연말까지 최종안을 내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남한강 이포보 가물막이 공사가 진행중인 경기 여주 대신면 천서리에서 열린 ‘4대강 공사 강행 저지 결의대회‘에서 4대강 죽이기 저지 범국민대책위 회원들이 17일 오후 4대강사업멈춰!라는 구호가 적힌 대형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여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명박 정부가 ‘거침없는 가속페달’을 밟는 까닭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공사 등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성공을 거둔 경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이 대통령은 청계천 상인 등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가며 공사를 벌였고 결국 공사기간도 본래 2년6개월에서 두 달이나 더 앞당겼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살인적 일정’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대통령으로 도약한 결정적 디딤돌이 된 ‘청계천’은 오히려 국정운영에 ‘독’이 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계천식 밀어붙이기는 서울시라는 도시 단위에선 유효하지만 훨씬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정 운영엔 적용되기 힘들다”며 “국정을 운영하려면 속도가 느리더라도 절차를 통한 동의의 형성이라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촛불’ 같은 국민적 저항에 부닥쳐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계획들을 진척시키지 못했다는 점도 조급증을 가속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시사평론가인 김종배씨는 “이 대통령이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며 “공사가 늦어지면 ‘설계변경’을 해서라도 공기를 맞추려 하는 것과 닮았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