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국민연대’와 야5당 대표자들이 18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실시와 관련 법규의 입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선거법에 걸린 ‘무상급식 서명’]
선관위, 불법성 여부 판단 무리수 잇따라
“정책대안 자유로운 경쟁 지나친 제약” 지적
선관위, 불법성 여부 판단 무리수 잇따라
“정책대안 자유로운 경쟁 지나친 제약” 지적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은 법 위반이다. 현수막을 거는 것은 법 위반이다. 기자회견을 여는 것은 법 위반이 아니다. 글을 홈페이지에 싣는 것은 법 위반이 아니다. 그러나 퍼나르는 것은 법 위반이다. 찬성 집회를 여는 것은 법 위반이다. 그러나 1인 시위는 법 위반이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무상급식 찬성운동에 대한 불법 여부를 이처럼 복잡하게 판단하고 있다. 매우 헷갈리는 결론이지만, 선관위의 이러한 판단은 모두 선거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공직선거법 90조는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정당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사진 또는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한 화환·풍선·간판·현수막·애드벌룬 등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 107조는 누구든지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선거구민을 상대로 서명이나 날인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2008년 총선을 앞두고도 한반도대운하건설 반대 운동이 선거법 위반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자, ‘한반도대운하건설 찬성·반대운동의 선거법위반 여부에 관한 운용기준’을 만들었다. 여기에서도 선관위는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기자회견, 보도자료 제공,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표명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한반도대운하는 이번 선거에서 각 정당 간 쟁점이 되고 있고, 대부분의 주요 정당이 선거공약으로 채택하였으므로 찬성·반대하는 홍보물을 일반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배부·게시하는 것은 선거에 영향을 끼치게 하는 행위로 보아 선거법에 위반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운하 건설 반대 또는 서명운동, 거리 행진, 집회 등도 위법하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선관위의 이런 판단이 선거법을 통한 과잉 규제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무상급식 또는 한반도대운하 건설 등 국민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정책 사안에 대한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라고 규정해 제한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정책적 대안이 선거과정에서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 자유롭게 경쟁을 벌이는 것이 민주적 절차의 기본원리라는 점에 비춰볼 때 선관위의 판단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또 무상급식은 한나라당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기 때문에, 특정 정당의 공약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한 점이 많다.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 설득에 나서는 것은 선거를 흑색선전 등 혼탁선거가 아닌 정책선거로 이끄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선관위 논리대로 라면, 정부가 4대강 사업의 장점을 선전하는 현수막을 내걸거나 홍보물을 배포하는 것도 관권선거로 규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병섭 상지대 법대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선거와 관련해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제한하는 나라도 드물다”며 “선관위는 선거법의 과도한 규제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을뿐더러, 정파적 이해관계가 있는 정당이 아니라 중립적인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오히려 선거법의 불합리한 점을 개정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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