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맨 오른쪽)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과의 행정고시제도 개편 당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행정고시 인원을 축소하는 행시 개편안을 전면 백지화하기로 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행시 개편안’ 백지화
정부가 내년부터 5급 공무원 신규 채용 인원의 30~50%를 민간 전문가로 채우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한 달도 안 돼 사실상 이를 백지화함에 따라, 원칙 없는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사회적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12일 지난 60여년 동안 시행해온 대규모 공채 위주의 공무원 채용 방식을 개방형으로 변경하는 것을 뼈대로 한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개편안의 핵심은 내년부터 5급 신규 공무원의 30%를 민간 전문가 가운데 뽑고, 이를 점진적으로 늘려 2015년부터는 신규 공무원의 절반을 전문가로 채우겠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내년부터 당장 공무원 채용 방식을 대폭 바꾸기로 한 것은 지난 1월 “공무원 채용제도를 개방과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체제로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서 비롯했다. 공직 사회 상위직급이 고시 출신으로만 구성돼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다양한 시각과 경험이 부족해 사회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데 미흡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행안부는 불과 7달 만에 예고도 없이 채용제도 개편안을 전격 발표했다. 제대로 된 공청회도 전혀 열지 않았다. 더욱이 이 방안을 유예기간도 없이 내년부터 서둘러 시행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의 반발이 겉잡을 수 없이 이어졌다. 대다수 전문가들도 공직사회에 외부 전문가를 수혈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갑작스러운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상당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혜 채용’이 불거지면서 여론은 급속도록 악화됐다. 염재호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지금까지도 평균 특채율이 37.4%에 이르는 등 행정고시와 특채가 균형에 맞아오던 것을 인위적으로 바꾸려하다 보니 반발을 산 것”이라며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뽑고, 행정고시를 계속 보완하고 이후 적절한 교육 훈련 등을 통해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현행 선발 인원을 유지하겠다고 기존 발표를 번복하자, 행시 준비생 등은 또다시 혼란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행시를 준비하는 정아무개(34)씨는 “정부가 갑작스럽게 고시제도를 바꾸겠다고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없던 일로 하겠다니 혼란스럽기만 하다”며 “정부가 행시 개편안에 대해 얼마나 충분히 검토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행시를 준비하는 이들의 모임인 포털 다음 카페 ‘행정고시 사랑’의 자유게시판에는 “달라진 게 뭐가 있느냐”는 불만 섞인 글과 댓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김경욱 김민경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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