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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행정·자치

“대형 건설사업 안하면 지방정부 빚 안 생긴다”

등록 2012-09-07 17:53수정 2012-09-08 13:58

염태영 수원시장은 대형 건설사업에 대한 집착만 버리면 지방재정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염태영 수원시장은 대형 건설사업에 대한 집착만 버리면 지방재정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염태영 수원시장 인터뷰
3년 만에 부채 70% 상환한 수원시…
선심성 사업, 불확실한 사업 줄이고 복지예산 확충
일본이나 미국에는 파산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다. 한국에서도 지자체들이 무리한 개발 사업을 벌이다 빚더미에 올라앉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수원시의 경우 2010년 염태영 시장이 취임한 뒤 3200억원의 부채를 3년 만에 600억원대로 감축해 화제가 되고 있다. 대형 개발 사업을 줄이고 사업계획을 치밀하게 검토해 예산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 주효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 수원은 어려운 상황에서 시의 부채 70% 이상을 상환해 재무건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나빠져 세수까지 줄어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뤄낸 값진 성과다. 초선인 염태영(52) 시장이 환경단체와 건설회사 근무 경험을 살려 대형 사업의 비용 절감 방법을 찾아낸 것이 성과를 뒷받침했다. 지난 8월16일 염 시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수원은 재정자립도와 재무건전성 다 좋은 것 같다. 비결이 있는가.

민선 3·4기까지는 개발이익을 기대하고 무리하게 대형 투자·재정 사업을 하는 시기였다. 수원시도 내가 취임하기 전에는 3200억여원의 부채가 있었다. 일반회계가 1조4천억~1조5천억원 정도였으니 부채비율이 23~24%에 달했다.

대형 사업은 안전하지 않으면 추진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취임 첫해인 2010년 부채 500억원을 줄였다. 올해도 애초 527억원의 상환 계획이 있었는데, 추경까지 편성해서 600억원으로 늘려 조기 상환을 하고 있다. 3년간 이자를 포함해 2500억여원의 부채를 줄여 올 연말에는 644억원만 남게 된다. 예산 대비 5% 이내로 줄였다.

빚 갚기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는.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빚이 많아 지자체가 파산하는 경우가 많다. 빚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우리나라도 대형 선심성 사업 등으로 빚에 허덕이는 지자체가 많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재정의 건전성과 직결되는 지방채 발행을 최대한 억제하고 '빚부터 갚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시장이 솔선수범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른 수건도 짜는 마음으로 긴축재정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기 등으로 사정이 나쁘기 때문에 불요불급한 사업은 줄이고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치중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원시는 부족한 투자 재원 보충을 위한 지방채 발행을 해왔다. 수원시는 과거 민선 4기 동안 모두 82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도로교통사업 등에 투자했다. 민선 5기 들어서는 지방채 발행이 없다. 시민에게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한 상수도사업비 23억원어치만 올해 발행할 예정이다.

마른 수건도 짠다는 마음으로

빚만 갚다 보면 지역개발 사업은 못할 텐데.

꼭 필요한 사업은 한다. 우리도 몇 가지 개발 사업이 있다. 그러나 삐끗하면 시의 재정 부담만 초래하게 된다. 재검토해 사업을 변경하거나 비용을 줄일 방안을 찾은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당시 큰 사업으로는 산업3단지 공영개발 사업과 도심 농수산물도매시장 이전 사업이 있었다. 한창 진행 중이던 산업3단지는 분양률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둬 분양률을 거의 100% 수준으로 올렸다. 농수산물도매시장 이전 사업은 이전이 아니라 현대화(리모델링)로 변경해 국비까지 끌어오는 성과를 거뒀다.

농수산물도매시장 이전을 백지화하고 현대화로 돌리는 과정은 아주 어려웠을 것 같다.

취임 뒤 가장 오랫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민자투자가 안 돼서 검토 끝에 시 재정사업으로 일단 돌렸다. 금융위기 뒤라 그것도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인 등 이해당사자들을 모아 설득했다.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바꾼 서울 가락시장을 견학하는 등 긴 과정을 통해 모두 설득했다. 이전 사업을 계속했다면 5천억원 정도가 들어갈 사업인데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이 밖에도 휴먼서비스센터, 보육정보센터, 여성건강증진센터를 모두 리모델링하고 있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은 가급적 지양하고 있다.

이해당사자 길고 긴 설득 작업

그 외에 다른 성과가 있을 텐데.

수원역 부근에 대형 유통단지가 생긴다. KCC 부지에 롯데가 대규모 쇼핑몰을 건설한다. 수원역사에 있는 애경백화점도 증축한다. 대형 백화점이 모이다 보니 교통난이 심화될 우려가 커졌다. 종합적으로 다시 평가해 백화점 쪽에 교통난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해 합의를 얻어냈다. 기존 고가도로를 연장해서 해결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고, 공사비도 업체들이 분담하기로 합의했다.

구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이 필요하다. 수원에서 사업을 많이 한 현대산업개발에 사정해 협약을 맺었다. 구도심에선 시민들이 자꾸 빠져나가 문제가 되는데 미술관이 들어서면 흐름이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수원에는 도시개발공사 같은 공기업은 없는가.

시설관리공단이 있다. 부채가 10%도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순탄하게 흘러온 것 같다.

대체로 무리 없이 일이 진행됐다. 어려운 상황은 이겨낸 것 같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에 서울사무소를 마련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의도한 대로, 또 노력한 만큼 국비를 많이 따왔다. 올해 국비지원액이 지난해보다 80% 늘었다. 국회·정부와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예산 확보 노력을 한 것이 성과를 거둔 것 같다. 국비가 오니 도비가 따라와 액수가 늘어나게 됐다. 우리 돈 적게 들이고 큰 사업을 하는 1석2조 효과가 아닌가 싶다.

지난해부터는 '대형 건설사업 설계 경제성'이란 제도를 도입해 16건 사업에서 55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이 제도는 대형 건설사업에 대해 기본 및 실시 설계 용역 완료 단계에 앞서 미처 검토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 설계 변경 요인을 줄이고 기능 개선을 통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선진 기법 중 하나다.

이렇게 아낀 덕에 복지사업은 예정대로 추진하고 있다. 10년 전에 복지예산이 10%, 5년 전이 20%였지만 지금은 30%로 늘어났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도서관 확충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시민들이 접하기 쉬운 곳에 설립해 책도 읽고 문화행사도 참여할 수 있게 문화복지 분야를 확대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평가는 어떤가. 민선단체장으로 유권자를 의식해 볼거리 위주의 정책을 하는 게 유리해 보이는데.

대체로 긍정적인 것 같다. 선전하기 좋은 대형 기념 건축물은 없지만 다른 곳에서 못하는 채무를 줄인 것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처음부터 시장 판공비를 30% 줄이면서 시민·시민단체·공무원에게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한 게 시민들의 협조를 이끈 것 같다. 또 시민참여예산제 등을 통해 시민이 참여해 직접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한 것도 효과가 컸다. 시의 예산 낭비를 감시하는 기능이 있어 공무원들이 긴장하는 계기가 된 듯싶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유사 중복 예산, 선심성 예산 등 낭비성 예산을 많이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지자체 재정난 중앙정부도 책임 있어

빚이 많은 다른 지자체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자체장의 의지가 관건인 것 같다. 얼마나 강한 의지로 추진하는지가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듯하다. 무리한 개발 사업을 버리고 지방 여건에 맞는 사업을 개발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시는 사업은 사업대로 하면서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부채까지 줄였다. 또 지방의 실패는 중앙정부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채무가 급증한 대부분의 사업은 중앙정부가 심사해 승인을 한 것이다. 지방정부만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수조원이 들어간 중앙정부 사업도 실패한 게 여럿 있다. 그건 왜 문제 삼지 않는지 모르겠다.

지방재정이 악화되는 데는 호화 청사나 무리한 사업 추진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구조적 문제점도 있을 듯하다.

세제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 8 대 2를 빗대서 '재정 2할 자치, 행정 3할 자치'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나는 1할 자치라고 본다. 광역단체가 3할이다. 기초단체는 광역단체가 떼어가면 1할에 불과하다. 중앙과 지방의 관계처럼 광역단체와 기초단체의 관계도 비슷하다. 광역단체가 더 많이 가져가는 불공정한 부분이 있다. 도세로 낸 것 중 47%밖에 못 받아온다. 절반 이상을 도에서 가져가는 것이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지방이 변할 수 없다. 앞으로 중앙정부에 그런 부분을 시정해달라고 요구하겠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 대 3 또는 6 대 4까지 개선해야 한다.

또 수원은 인구는 광역시 수준인데 기초단체로 돼 있어 광역에 비해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인구는 울산·창원과 비슷하다. 그러나 광역시와 기초단체로 갈려서 받는 불이익이 많다.

임기 절반이 지났다. 어려움은 없었나.

아직도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예산은 부족하고, 또 예산이 있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행정 관련해서도 중앙의 간섭이 많다. 가만 놔두면 될 것을 긁어서 복잡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김학준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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