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감사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초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감사는 태생부터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할 소지가 다분했다. 지난해 말 영구 정지된 월성 1호기는 문재인표 탈원전 정책의 상징으로, 친원전 쪽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다. 지난해 9월 국회가 의결한 감사 요구안은 월성 1호기 폐쇄의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탈원전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이 발의한 것이었다.
논란이 본격화한 것은 5월 초 <조선일보>가 최재형 감사원장의 발언을 기사화한 직후다. 감사원이 기한을 훌쩍 넘긴 4월에 ‘보완 감사’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던 터였다. 신문은 최 원장이 “외부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독립성·중립성이 생명인 감사원장으로서 마땅한 발언이라는 평가와 보수 성향의 최 원장이 정치색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엇갈렸다.
최 원장의 4월 감사원 직권심리 당시 발언이 추가로 공개되자 여권은 총공세를 퍼부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7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최 원장이 감사원 직권심리에서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문 대통령은 한수원 사장이 할 일을 대신 한 것’, ‘대통령이 시킨다고 다 하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최 원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와 문제의 발언이 백 전 장관의 주장에 반론을 펴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최 원장의 인척 가운데 원자력연구소 연구원과 보수 신문의 논설주간이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논란은 좀체 잦아들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정치적으로 편향돼 감사원장에 적격한 인사가 아니다” “대선 불복이나 다름없는 반헌법적 발상” “대통령 국정 운영 방향과 맞지 않으면 사퇴하고 나가서 정치를 하라” 등의 발언을 퍼부으며 최 원장을 몰아세웠다. 반면 야권에서는 ‘제2의 윤석열’이라며 최 원장의 ‘소신’을 추켜세웠다.
지난 4월 이준호 감사위원의 퇴임 뒤 후임 위원 선임 과정에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제청해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을 최 원장이 거부한 것도 여당은 문제 삼았다. 최 원장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월성 1호기 (감사)가 워낙 논쟁적 주제여서 (감사)위원회 변화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 약간 소극적으로 (제청을) 미루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보수적 성향으로 알려진 최 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감사원장으로 발탁된 데는 그가 법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균형 있는 판결을 해왔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청와대 역시 최 원장을 감사원장으로 지명하면서 “법관으로서의 소신”을 강조하며 “감사원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면서 깨끗하고 바른 공직사회와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나갈 적임자”라는 기대를 밝힌 바 있다. 맥락이나 상황보다는 자신이 세운 ‘원칙’에 맞춰 판단하는 전형적인 판사 스타일이라는 게 최 원장에 대한 여권 인사들의 평가다. 하지만 진의를 떠나 최 원장의 발언이 정쟁의 불쏘시개가 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 원장을 놓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했던 여야는 이번에도 비슷했다. ‘감사 지시 방향이 의도적’이라며 최 원장을 몰아붙였던 민주당은 ‘판사다운 본능으로 중심을 잡은 것 같다’는 반응이었고, 최 원장의 강단을 높게 평가했던 국민의힘 쪽은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
김지은 김원철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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