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행사 전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서병수 경선준비위원장이 15일 대선주자 토론회를 정책소견발표회로 변경하는 것에 공감대를 이뤘다. 하지만 일부 최고위원과 대선주자들이 선거관리위원회를 먼저 출범한 뒤 토론회나 발표회를 치러야 한다고 반발하며 ‘서병수 선관위원장 불가론’을 들고 나왔다. 선관위원장 인선으로 갈등이 번지는 와중에 이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간 통화 녹취록 유출 논란까지 돌발 악재로 떠올랐다.
서 위원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의 제안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토론회 대신 발표회로 전환할 생각이 있다”며 “토론회로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당에 분란이 쌓여서 국민이 걱정하고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혔다. 서 위원장은 본래 18일 예비후보 토론회를 강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이 대표가 전날 제안한 대로 ‘발표회’라는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토론회 논란의 본질은 ‘경준위의 권한 남용’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내홍은 계속되고 있다. 비전발표회를 열더라도 선관위 출범 이후에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도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어서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한겨레>에 “경준위 의사 결정에 따르겠다. 최고위 의결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토론회를 발표회로 변경하는 것을 절충안의 마지노선으로 보고 사흘 뒤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조수진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토론이든, 비전설명회든 예비후보의 활동을 주관하는 기관은 선관위가 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며 “선거관리위원회를 조속히 출범시켜, 선관위가 ‘몇일 몇시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해달라’는 공고를 하도록 하고, 이후 등록한 예비후보를 상대로 선관위가 경선준비위원회의 안을 검토해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김재원 최고위원 역시 13일 “월권행위가 토론을 없애고 다른 모습으로 둔갑한다고 해서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경준위 주최 행사에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이 대표가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는 17일 오전 열릴 최고위원회에서 격론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갈등은 선관위원장 인선 문제로 번질 태세다. 이 대표는 서 위원장에게 선관위원장까지 맡길 계획이지만 일부 대선주자와 최고위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지금의 경준위 관련 혼란의 핵심은 명확하다. 이 대표가 공정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작금의 혼란을 야기하고 증폭시킨 서병수 경준위원장을 선관위원장으로 임명하려는 의도”라며 “서 위원장은 이미 공정성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라고 지적했다. 조 최고위원도 지난 13일 “서 위원장을 선관위원장으로 해달라는 대표의 요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비전발표회 참석을 두고 원론적인 입장만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날 효창공원 참배를 마치고 토론회를 정견 발표로 바꾼다면 참석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선거의 규정과 원칙에 따른 결정이면 당연히 따라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준위가 주관하는 행사가 당헌·당규에 반한다는 점을 주장해온 윤 전 총장이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윤 전 총장 캠프 관계자도 <한겨레>에 “경준위는 경선 준비만 해야 되는 게 맞지 않냐”면서도 “당에서 어떻게 정리하는지 보고 참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입장을 유보했다.
심화된 당 내홍 속에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의 통화 녹음을 유출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갈등은 더 악화되는 모양새다. 윤석열 캠프의 총괄부실장인 신지호 전 의원이 이 대표를 겨냥해 ‘탄핵’을 언급해 논란이 되자, 윤 전 총장은 지난 12일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두 사람의 ‘통화 녹취록’이라는 파일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며 논란이 일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통화 녹취록 유출 논란과 관련해 “국민의힘부터 먼저 공정과 상식으로 단단하게 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통화 내용을 유출한 게 사실이라면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전 총장은 전날 캠프 참모들로부터 녹취록 유출 논란을 보고 받고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유출됐다는 녹취 파일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작성하고 유출된 녹취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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