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전 국무총리.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충청권의 ‘포스트 제이피(JP)’로 불린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71.
고인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기획재정부 전신)에서 근무했지만 1977년 치안본부로 전보돼 충남지방경찰청장을 지내는 등 20년 가까이 경찰로 일하며 공직을 마쳤다. 1995년에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한 그는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충남 지역(청양·홍성)에서 당선되면서 ‘젊은 충청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자 이듬해 공동여당인 자유민주연합(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겼고 2000년 16대 국회에서 재선에 성공해 원내총무(현재 원내대표)가 됐다. 당시 김종필 총재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와 이완구 전 총리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인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나라당으로 말을 갈아타고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세종 행정도시 축소 수정안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를 통해 고인은 충청권 대표 정치인으로 발돋움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가까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정부 출범 뒤 2013년 4월 충남 부여·청양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3선에 성공했고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되며 승승장구했다. 2015년 2월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충청 대선주자로 주목받았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금품 로비 대상으로 지목되며 70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정계복귀는 하지 못했다.
고인은 2012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증을 진단받은 뒤 골수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지만 최근 혈액암이 재발하며 투병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백연씨와 아들 병현·병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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