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등 비대위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총사퇴 의사를 밝히는 입장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이 6·1지방선거 참패에 따라 격랑에 휩싸였다.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일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했다. 차기 대권 재도전을 노리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뛰어든 이재명 의원을 향해선 ‘패장의 반성 없이 출마해 당을 사당화했다’는 비판과 책임론이 쏟아지는 등 새 지도부 구성을 앞두고 극심한 내홍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윤호중 위원장은 2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선거 패배에 대해 지지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당원 여러분께 먼저 사죄드리고 민주당의 더 큰 개혁과 과감한 혁신을 위해 회초리를 들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비대위원 일동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공개 회의에서 비대위원들은 ‘대선 패배 뒤 곧바로 이어진 지방선거 국면 탓에 패인 분석과 당의 혁신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데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비대위는 대선을 비롯한 선거 패인 분석과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관리를 맡을 2개월짜리 임시 비대위를 꾸리는 데에도 합의했다.
광역단체장(전체 17석) 5석이라는 초라한 성적이 확실시되던 이날 새벽부터 민주당 의원들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입장문을 내며 선거 참패 원인을 돌아봤다. 특히 비이재명계에선 이 의원과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송영길 전 대표를 향해 집중 포화를 쏟아냈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자기위안, 희생 없는 도전이 지선 패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 전략공천위원장을 맡았던 이원욱 의원은 “이재명 후보는 본인의 당선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고 계양으로 ‘도망’갔다”며 “대선 패배 후 ‘졌잘싸’라고 위로하며 지냈던 순간 민심은 민주당으로부터 멀어져갔고, 송영길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제 지역을 떠난 조기 등판은 그 정점이었다”고 비판했다.
친문재인계인 홍영표 의원도 “사욕과 선동으로 당을 사당화시킨 정치의 참담한 패배”라며 이 위원장을 저격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선 이후 ‘졌지만 잘 싸웠다’는 해괴한 평가 속에 오만과 착각이 당에 유령처럼 떠돌았다”며 “저부터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전해철 의원 역시 “선거 패배에 책임 있는 분들이 필요에 따라 원칙과 정치적 도의를 허물고, 어느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변명과 이유로 자기방어와 명분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국민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민주당의 모습과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비이재명계가 이처럼 한목소리로 ‘이재명 책임론’을 내놓은 것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 의원의 당권 도전을 견제하기 위한 집단행동으로 풀이된다. 당내에선 이 의원의 출마가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한 당권 도전의 디딤돌이라고 보고 있다.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이들은 한발 물러서 객관적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전해철 의원)는 것이다.
그런 탓에 전당대회를 관리할 임시 비대위 구성에 대해서도 당내에선 의구심 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당헌·당규대로라면 박홍근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의 자리를 겸직해야 하지만 ‘2개월짜리 지도부’를 새로 추대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친이재명계인 박홍근 원내대표 대신 ‘공정한 경선 관리자’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민주당은 또다른 임시 지도부를 꾸려 대선과 지선을 평가하고 반성과 쇄신에 나설 것 같다”며 “그 일도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새 지도부와 평가주체가 정당성 있게 구성되고, 그들의 작업이 공정하게 전개될 것이냐가 당장의 과제다”라고 했다.
초선의원들도 투명한 대선 평가를 강조하며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운영위원장 고영인)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지선 및 지난 5년 민주당의 모습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평가는 소수가 밀실에서 논의하는 과정이 아니라 의원들과 지지자, 일반 국민 등 민주당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일 오후 열릴 당무위-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는 이같은 목소리들이 여과없이 분출되며 난타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회의를 통해 당의 앞으로의 방향, 다음 비대위 지도체제를 구성하는 문제,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 대한 평가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위원회 의장, 시·도당위원장, 당 소속 시·도지사 및 기초단체장협의회 대표 등으로 구성된 당무위와 연석회의를 여는 것은 의원들 뿐 아니라 원외 인사들의 의견도 폭넓게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당내에선 자칫 반성과 쇄신을 해야 할 시기에 논쟁이 패권 다툼으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상민 의원은 “끈적거리는 계파주의를 집어던지고 부숴버려야 한다. 상대에게 책임 떠넘기지 말고 결과에 대해 회피하지 말고 무한 책임을 지자”고 글을 남겼다. 또다른 다선 의원도 “지금은 비상한 시기”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당의 가치를 재설정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날 당 안팎에서 쏟아진 책임론에 대해 이재명 의원은 어떤 입장도 내지 않은 채 침묵했다. 그는 캠프 해단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대위 총사퇴’와 ‘책임론’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다만 이 의원과 가까운 정성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선거 패인을 두고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과 질책에도 반성과 혁신을 못한 우리들의 잘못”이라고 밝혔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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