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에프-21 시제기 1호기가 19일 오후 경남 사천에 있는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 이륙해 첫 시험 비행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2022년 7월19일 오후 3시40분. 공군 조종사 안준현 소령은 한국형 전투기(KF-21) ‘보라매’의 조종간을 당겼다. 케이에프-21은 경남 사천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를 가뿐하게 박차고 올랐다. 이날 이륙은 ‘우리도 드디어 따라잡았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 시작 21년 만에 첫 비행에 성공한 한국은 세계 8번째의 초음속 전투기 개발에 다가섰다. 지금까지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프랑스, 스웨덴, 유럽 컨소시엄(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뿐이다. 첫 비행 성공을 계기로 케이에프-21에 대한 궁금증을 추려 문답으로 정리해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시제기 출고식과 이번 첫 비행은 어떻게 다른가.
“지난해 4월9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된 케이에프-21 시제기 출고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왜 1년 뒤에야 첫 비행을 하게 됐는지 묻는다. 성능을 시험하기 위하여 제작한 기체인 시제기는 그동안 도면으로만 존재했던 전투기를 실물로 만든 것이다. 지난 4월 시제기 출고식은 이 시제기를 공장에서 꺼내 국민에게 공개한 행사다. 시제기를 만든 뒤 애초 설계한 성능이 정말 나오는지 검증과 시험을 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케이에프-21 시제기 6대로 각종 성능, 기체 구조 시험을 했다.
시제기는 승용차에 비유하면 조립을 마치고 공장에서 나온, 아직 엔진 시동을 걸지 않는 상태의 자동차다. 자동차 엔진의 시동이 정상적으로 걸려야 차가 움직이고 각종 장비가 작동하는 것처럼, 전투기도 엔진 시동이 걸려야 제 성능을 발휘한다. 케이에프-21은 지난해 4월9일 시제기 출고행사 13일 뒤인 4월22일 최초 엔진 시동에 성공했다. 최초 엔진 시동 이후 1년 넘게 엔진 출력을 높이는 시험, 기체가 활주로를 고속으로 달리는 지상 주행시험 등을 거쳐 지난 19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케이에프-21에는 3만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간다. 또 22만개가 넘는 리벳과 볼트, 7000개 구조물, 550개의 전자장비 등이 제 성능을 발휘하는지 확인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첫 비행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첫 비행을 시작으로 앞으로 4년간 2200번 가량의 비행을 통해 각종 성능과 공대공 무장 적합성 확인 등을 마치면, 2026년부터 본격적인 한국형 전투기 양산에 들어간다”
―2차 대전 일본군 전투기보다 느린 한국형 전투기라는 말도 있던데.
“초음속 전투기인 케이에프-21 최고 속도는 음속의 1.8배(시속 2200㎞)다. 첫 비행에선 이에 휠씬 못 미친 시속 약 400㎞로 비행했다. 일본 포털에 실린 <한겨레> 케이에프-21 첫 비행 일어 기사에는 “시속 400㎞는 제로센보다 느리다”고 댓글이 달렸다. 제로센은 2차대전 때 일본군 전투기로 최고 속도는 600㎞ 안팎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시험 비행의 특성을 몰라 나온 것이다.
지난 19일 케이에프-21 첫 비행은 이륙과 착륙 성능 확인에 초점을 뒀다. 시제기 첫 비행에서 최고 속도를 확인하진 않는다. 앞으로 2200번 가량 시험비행을 하는데 초기에는 이·착륙 같은 항공기 안전성을 확인하는데 주력한다. 이후 고도·속도·기동을 순차적으로 높여 2026년께 최종적으로 비행 성능과 조종 특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사람에 비유하면 첫 비행은 바닥을 기어다니던 아기가 땅을 딛고 서서 첫 발자국을 뗀 것이다. 첫 발자국을 떼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걷고 뛰고 도움닫기를 한다. ‘제로센보다 느린 한국형 전투기’란 일본 누리꾼의 반응은 이제 첫 발자국을 뗀 아기에게 왜 당장 달리고 높이뛰기를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격이다.”
케이에프-21 시제기 1호기가 19일 오후 3시40분께 첫 시험비행을 위해 경남 사천에 있는 개발업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근처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케이에프-21 시제기 1호기가 19일 오후 경남 사천에 있는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 이륙해 첫 시험 비행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왜 아우디 살 값을 들여 소나타를 개발하느냐는 말이 있는데.
“케이에프-21은 2001년 8월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으로 시작한 지 21년 만에 첫 비행에 성공했다. 21년이 걸린 이유는 기술 개발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7차례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6차례나 ‘타당성 없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돈이 너무 많이 드는데 사업이 성공할지 불투명하고 투입 비용 대비 이윤을 남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사업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9년이 걸렸고 사업이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애초 군과 전문가 사이에선 한국형 전투기 사업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런 주장을 펴는 쪽은 △미국과 유럽 같은 항공선진국이 아닌 한국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굳이 전투기를 만들 필요가 없고 △이미 성능이 검증된 미국 전투기를 사오는 게 빠르고 싸고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는 ‘단군이래 최대 무기 사업’이란 수식어가 항상 붙어다닌다. 개발 비용에만 8조8천억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돈은 일선부대에 배치할 양산비용과는 별도다. 개발 비용·기간·성능 등을 감안하면 한국형 전투기 사업은 가성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성능 좋은 아우디를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돈으로 왜 소나타를 오랜 시간을 들여 개발하느냐”는 식의 불만이 군 안팎에서 계속 나왔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은 30~40년된 낡은 전투기인 F-4, F-5를 바꾸는 사업 성격도 컸다. 사업이 늦어지고 F-4, F-5 추락 사고가 계속 일어나 조종사들이 숨졌다. ‘언제 개발돼 실전 배치될지 모를 한국형 전투기를 기다리지 말고 검증된 미국 전투기를 빨리 사와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나왔다.”
―‘타이거 아이’ 사건 굴욕 이후에도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는 이유는.
“케이에프-21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5세대 전투기에는 못 미치고 부분적 스텔스 기능을 갖춘 4.5세대 전투기다. 미국 등 항공 선진국이 6세대 전투기 개발에 나선 상황을 감안하면, 한국이 앞으로 30년간 사용하기에는 케이에프-21이 구형 전투기란 지적도 나온다. 방위사업청도 케이에프-21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기가 아니란 점은 인정한다.
게다가 케이에프-21은 100% 국내 개발 전투기는 아니다. 케이에프-21 전체 가격의 15% 가량을 차지하는 엔진은 미국에 본사를 둔 제너럴일렉트릭(GE) 제품이다. 케이에프-21 시제기의 국산화율(부품 기준)은 65% 수준이다. 엄밀히 말하면 케이에프-21은 ‘국내 독자개발 전투기’가 아니라 ‘국내 주도 개발 전투기’다.
가성비가 낮고 만드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국산화율도 기대보다 높지 않는데 왜 굳이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려고 할까. 전투기 독자 플랫폼를 확보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돈 주고 사온 전투기는 고장나면 주요 부품은 우리 마음대로 수리못하고 미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독자 플랫폼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2011년 ‘타이거 아이’ 사건이 자주 등장한다. 타이거 아이는 F-15K 전투기의 동체 밑에 장착돼 있는 센서로, 밤이나 악천후에도 정확하게 폭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비다. 2011년 8월 미 국방부 비확산담당 수석부차관보 등 11명의 조사단 일행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한국이 미국에서 사온 전투기인 F-15K 센서인 타이거 아이 무단분해 의혹을 조사하러 왔다. 미국 조사단은 한국 공군 고위 관계자와 공군 정비창 관계자를 불러 형사가 범인을 취조하듯 윽박질렀다. 당시 한국 공군은 “타이거 아이가 너무 고장이 자주 나서 이물질이 들어갔는지 확인하려고 정비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미국은 고함을 지르고 책상과 벽을 주먹으로 치는 등 한국 공군 관계자들을 몰아붙였다고 한다.
당시 미국이 겉으론 타이거 아이 봉인 무단 훼손을 문제삼았지만, 속으로는 한국이 타이거 아이를 분해한 목적이 당시 개발중인 한국형전투기에 적용할 기술을 빼돌리기 위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한국이 1970·80년대 미국산 무기를 분해한 뒤 그대로 본따 역설계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을 것이란 의심이었다. 타이거 아이 봉인 훼손 논란은 ‘무기는 팔아도 기술은 안 판다’는 미국의 무기 수출 원칙에서 비롯됐다. 미국이 한국에 이런 원칙을 고집하는 것은 한국형 전투기가 양산이 되면 한국에 팔 미국 전투기 규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투기를 팔고 난 뒤 부품과 성능 업그레이드를 통해 돈을 번다. 30년 안팎 사용하는 전투기 총 운용비 가운데 최초 도입비는 30%이고 유지 보수비용이 70%를 차지한다. 국내 정비가 제한되니 부품비와 수리비는 미국이 부르는게 값이다. 미국은 전투기를 팔면 부품값을 계속 올린다. 미국은 2014년 타이거 처음 도입 때보다 부품가격을 평균 6배 인상을 요구했다.
부품과 수리 문제는 ‘바가지’ 가격뿐만 아니라 공군 전투력에도 큰 지장을 준다. 전투기 핵심 부품이 미국에서 와서 수리하는데 6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릴 때도 있다. 이 경우에는 비싼 전투기가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공군 주력기인 F-15K와 F-16의 수리부품 부족으로 인한 임무수행 제약이 심각하다. 공군이 보유한 F-15K와 F-16은약 200여대 가량인데 최근 5년간 F-15K의 수리부속 부족으로 인한 비행불가 발생 건수는 535건, 수리부속 부족으로 인한 특정임무불가 발생건수는 79건이라고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실이 지난해 밝힌 바 있다. F-16은 같은기간 수리부속 부족으로 인한 비행불가 발생 건수 548건, 수리부속 부족으로 인한 특정임무불가는 1202건이 발생했다. F-15K의 경우 한번 임무불가상태면 평균 16일간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으며 F-16은 평균 92일간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케이에프-21 시제기 1호기가 19일 오후 경남 사천에 있는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 이륙해 첫 시험 비행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한미동맹을 강조한 윤 대통령이 시험 비행 성공을 ‘자주국방 쾌거’라고 한 이유는.
“수리보다 더 큰 문제는 전투기 무장시스템 업그레이드에서 생긴다. 국산 미사일 등을 개발해 전투기에 달아 시험하려고도 해도 미국 허락을 받아야 한다. 미국이 허락하지 않으면 미사일 등 첨단 무기체계 개발에 발목이 잡힌다. 아무리 최신 전투기라고 해도 미사일 등 무기를 달고 첨단 전자장비와 네트워크를 구성하지 않으면 하늘에 떠있는 쇳덩이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사온 전투기에 국산 미사일 등을 달아 시험하려면 미국 허락을 받아야 한다. 최신 항공전자 장비가 들어간 전투기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제 때 하지 않으면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들은 전투기를 국내에서 개발해 독자 플랫폼을 확보하면 풀린다. 지난해 4월9일 한국형 전투기 시제기 출고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산 전투기가 갖는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필요한 시점에 언제든 제작해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다. 언제든지 부품을 교체할 수 있고 수리할 수 있다. 개발 과정에서 획득한 에이사 레이더를 비롯한 최첨단 항전 기술을 ‘KF-16’, ‘F-15K’와 같은 기존의 전투기에 적용하여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좀체 자주국방을 거론하지 않던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9일 케이에프-21 첫 시험비행 성공 6시간 뒤 “자주국방으로 가는 쾌거”라고 밝혔다. 그만큼 독자 플랫폼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