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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쇄신 아닌 ‘이재명 팬덤’ 물꼬 튼 민주당 혁신안…갈등 화약고 되나

등록 2023-08-11 05:01수정 2023-08-11 14:17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3차 혁신안 발표를 하려고 당대표실로 들어서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3차 혁신안 발표를 하려고 당대표실로 들어서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은경 혁신위’가 10일 내놓은 더불어민주당 혁신안의 핵심은 ‘대의원제 무력화·권리당원 권한 강화’와 ‘현역 국회의원 평가 강화’다. 두 가지 모두 국민의 피부엔 그리 와닿지 않는 반면, 당 내부적인 폭발력은 강한 사안이다. 혁신위가 잇단 설화와 논란으로 신뢰 상실을 자초한 데 이어, 민심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 근본 원인인 ‘도덕성 문제’와는 무관한 답을 내놓은 탓에 당 안에선 “혁신안이 혁신의 불쏘시개가 아니라 당내 갈등의 화약고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혁신안이 발표되자 민주당 안에선 계파를 넘어 ‘혁신의 방향이 틀렸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혁신위를 만든 계기인)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이후 나온 혁신안이 대의원제 축소라고 하면 어느 국민이 공감을 하겠냐”(전해철 의원)는 것이다.

특히 당에서 오래 활동한 핵심당원이 중심인 대의원의 권한을 없애다시피 축소하는 제안에 반발이 컸다. 현재 당헌·당규는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 때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국민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씩을 반영해야 하는데, 이를 ‘권리당원 70%, 일반국민 30%’로 바꾸자는 것이다. 대의원 1표가 권리당원 60표의 가치로, 권리당원(120만여명)의 1.3%에 불과한 대의원(1만6천여명)의 의사가 ‘과다대표’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의원제는 민주당이 약세인 지역에서 기반을 구축하는 동시에, 노동계 등 민주당과 연대하는 세력에게 발언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비이재명계 한 의원은 한겨레에 “대의원은 당에서 오래 고생한 사람이 대부분으로, 이들이 없으면 영남이나 강원 등 당세가 약한 곳에선 당의 존립 자체가 어렵다. 이들을 배제하고 6개월 당비를 내면 자동으로 되는 권리당원에게만 권한을 주는 건 무모하다”고 비판했다. 친이재명계의 한 의원도 “대의원제 무력화는 당내에서 싸움만 일으키는 문제로, 지역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이렇게 되면 이제 전당대회 때 후보들이 대구·경북은 안 가도 된다는 말이 된다”고 우려했다.

대의원제 무력화에 조응하는 제안은 권리당원 권한 강화다. 당 안에선 강성당원 팬덤이 민주당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를 흔드는 ‘고질병’으로 꼽히는 상황에서, 이런 방안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냐는 반문이 제기된다. 계파색이 옅은 한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당선된) 2022년 8·28 전당대회 뿐 아니라 여러 전당대회에서 강성당원의 지지를 받은 이들이 줄곧 승리해왔다”며 “대의원의 선택을 받아도, ‘거친 발언’으로 당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낙선하는 현실을 외면한 방안”이라고 짚었다. 권리당원 다수가 이재명 대표 지지층으로 분석되는 탓에 당 안에선 “친이재명계가 계속해서 당권을 장악하려는 것”이라는 날선 반응도 나온다.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 때 현역 의원 평가를 강화하는 방안을 놓고도 긴장감이 크다. 지금은 당내 평가에서 하위 20%에 속하는 의원에겐 후보자 경선 득표의 20%를 일괄적으로 감산하도록 규정돼있는데, 이를 하위 30%까지 넓히고, 감산 범위도 40%까지 높이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168명인 현역 민주당 의원 중 50명이 하위 30%에 속해 경선에서 점수를 잃어 지금보다 불리해진다.

이는 정치 신인의 등용문을 넓히는 측면도 있으나 현역 ‘물갈이’의 폭이 더 커질 수 있어, 8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의 ‘생환’이 당면과제인 의원들에겐 대의원제보다 더 민감한 내용이다. 실제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김상곤 혁신위’가 도입한 ‘하위 20% 공천 배제’는 국민의당 분당 사태를 야기할 정도의 파열음을 빚었다. 당시 혁신위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20%라는 숫자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적당한 긴장과 안정 사이에서 찾은 숫자였는데, 김은경 혁신위가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역 물갈이론이 주로 강성지지층과 친이재명계에서 나오는 탓에, 이 역시 ‘친이명계 체제 공고화’의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혁신위가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면서도 끝내 민주당의 중추인 이재명 대표와 주류를 향한 메시지는 내놓지 않았단 점도 비판을 사고 있다. 혁신위는 애초 검토했던 ‘3선 이상 출마자 벌점 부여’는 제안하지 않는 대신 “수차례 의원직을 역임하시고 의회직과 당직을 두루 맡으신 분들”의 불출마를 촉구했다. 이에 비이재명계 이원욱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선출직만 4번이신 분, 당의 최고 기득권자·수혜자 이재명 대표는 혁신 대상에서는 피해가셨다”고 비판했다.

지난 6월 출범한 뒤 김 위원장의 ‘노인 폄하’ 발언 등으로 논란을 자초한 혁신위는 이날 혁신안 발표와 함께 서둘러 활동을 종료했다. 공은 혁신위 출범과 수습의 책임을 모두 진 이재명 지도부에 던져졌다. 한 지도부 관계자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책임있게 논의해 혁신안 수용의 정도와 강도를 정하고 의원들과도 (그 정도를)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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