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법에 반대해 국회 법사위를 점거하고 농성중인 배일도, 박계동 의원이 긴급 공수받은 펼침천을 걸고 있다. 펼침천에는 “수도이전 재시도 결사반대”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사진제공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minwk@dailyseoprise.com
[인터뷰] 농성장 보급투쟁(?) 막고 의원에 호통친 국회 방호원 2일 행정도시건설법으로 한바탕 소란을 겪은 국회에서 ‘이색적 사건’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이른바 ‘농성의원 보급투쟁’ 이었다. 17시간 동안 법사위 사무실을 봉쇄하고 농성을 벌인 한나라당 4인방(이재오 김문수 배일도 박계동)이 외부로부터 ‘필요물품’을 조달하려다, 불발에 그친 사건이다. ‘보급투쟁’이 ‘불발’로 끝난 것은 국회 경위 때문이었다. 그를 만났다. “그분들한테 전혀 감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국회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질서입니다. ‘직업의식이 넘쳤다’고 이해해주세요.” 여야가 합의한 행정도시건설법안에 반대해 국회 법사위원회 회의실을 ‘못질’로 봉쇄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2일 비밀리에 플래카드, 옷가지, 음료수 등을 보급받으려다 국회 경위들에게 들통나 실패했다. 네티즌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지체높은 의원들의 보급투쟁을 감히 경위가 막다니…”
‘불발된 농성장 보급투쟁’의 전말은? 사건은 지난 2일 오후 3시20분께 발생했다. 한나라당 의원 4명이 농성중인 국회 본관 3층 법사위 회의장 외부 창문에서 1층쪽으로 긴 노끈이 드리워졌다. 국회 본관 3층 법사위 회의장에서 두 의원이 노끈을 내려보냈고 미리 연락을 받은 보좌관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보급물품’을 담은 비닐봉지를 노끈에 묶어 법사위 회의장에 물건을 반입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농성 의원들의 보급물품은 끝내 회의장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건물 외부를 통해 수상한 물체가 전달되는 것을 목격하고 달려든 국회 경위(방호원)들과 전경들의 제지 때문이었다. 국회 경위들은 국회 건물 외부로 노끈에 묶여 올라가는 수상한 비닐봉지를 잡아채 내용물을 빼앗았다. 한발 더 나아가 한 경위는 물건을 보급받기 위해 창문을 연 배일도·박계동 의원을 향해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물품을 들여오려면 정문으로 들어와야지, 왜 창문으로 전달합니까? 의원들이 법을 지켜야지 법을 무시하면 됩니까”라고 호통을 쳤다. 농성 의원들은 경위들의 대거리에 흥분했다. “니가 이 정권 주구냐? 국회의원이 하는 일을 왜 방해하냐”(배일도 의원), “니들 일이나 잘 해라”(박계동 의원)고 맞고함을 쳤지만 그 경위는 “국회의원이 먼저 법과 규정을 지키십시오”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나라를 호령하는 국회의원들의 추상같은 권위 앞에서도 법과 규정, 질서를 내세운 국회 경위는 당당했다. “니들 일이나 잘해라”는 의원 호통은 그래서 ‘생뚱맞다’ 기자는 의원들에게 “의원님 먼저 법과 규정을 지키라”고 당당하게 호통친 국회 경위를 찾아나섰다. 그의 당당함의 이유가 궁금했다. 수소문 끝에 국회 사무처 경호과에 근무하는 이경균 방호계장(48)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계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옷가지, 음료수 등을 넣어주는 것은 정문을 통해 정상적으로 전달하면 얼마든지 가능한데 왜 규정에도 없는 방법을 쓰느냐고 줄을 끊고 제지했다”며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 계장은 또 “의원들이 청사 밖으로 플래카드를 내걸려 했는데 국회 청사에 벽보, 깃발, 현수막 등을 부착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를 의원들에게 알렸을 뿐”이라며 “큰 소리를 친 것은 잘못했으나 (의원들의 정치적 행위를) 방해할 의도도 없었고 의원들에 감정이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국회청사관리규정 제5조(금지행위)에는 ‘1. 청사 또는 청사안의 기물을 손괴하는 행위 2.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총기·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청사안으로 반입하거나 이를 청사안에서 휴대하는 행위 3. 청사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점거하여 농성하는 행위,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청사에서 행진 또는 시위를 하거나 벽보·깃발·현수막·피켓 기타 표지를 부착 또는 사용하는 행위’는 모두 금지행위로 돼 있다. 이 계장은 국회 규정대로 충실히 직무를 수행한 셈이고, 그에게 “니들 일이나 잘 해라”는 의원들의 호통은 그래서 ‘생뚱맞았다’. “질서유지가 직업적 목적, 누구의 편을 들지 않아요” 장관·총리를 불러놓고 호통을 치는 국회의원을 향해 국회 경위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날마다 지체 높은 분들을 의원들이 불러내 호통치는 것을 목격해서일까? 이 계장은 “내 직업은 국회 안팎의 질서를 유지시켜 의원들이 최상의 입법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서비스 하는 일”이라며 “경위로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선 지위가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단호하게 지적을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고, 또 나도 그렇게 후배들에게 매일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먼저 법과 규정을 지켜야 하고, 그런 일은 법 이전에 상식있는 사람이면 지켜야 할 질서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계장은 질서유지 행위가 자칫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 치우칠 수 있다는 사실도 경계했다. 이 계장은 “대통령 탄핵때도 그랬지만 여당이든, 야당이든 우리는 누구의 편을 들지 않는다. 다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바로잡을 뿐”이라며 “그것은 (나의)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는 우리의 직무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정치적 정당성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국회 많이 변했어요. 의원들의 탈권위적 모습에 희망 느낍니다.” 올해로 22년째 국회 경위로 재직하며 국회 안팎의 질서유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이 계장은 “과거에 권위적이었던 국회의 문화가 많이 변하고 있는데 희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 이 계장은 “과거에도 회의장이 봉쇄되고 차단봉으로 회의실 문을 부수는 일이 무수히 많았다”며 “옛날 국회에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주범은 당리당략이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회의장 점거하고, 치고, 받고, 싸우고…”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 계장은 “ 요즘은 그래도 그런 것은 많이 사라지고 적어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추세로 바뀌고 있지 않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계장은 “국회의원들의 등원 모습만 봐도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며 “옛날에는 고급승용차만 탔던 의원들이 즐비했는데 지금은 중형차도 많고, 손수 운전하는 의원들도 있고, 서류가방도 직접 들고 다닌다. 의원들이 탈권위화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약자들의 점거농성 “직무유기냐, 과앙진압이냐? 머리속 복잡” 고충 이 계장은 국회 질서유지의 속앓이도 털어놨다. 이계장은 “장애인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국회에서 시위를 하거나 점거농성을 할 때 갈등한다. 법대로 단호하게 집행하기도 어렵고 방치할 수도 없다”며 “합리적으로 질서를 회복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직무유기냐, 과잉진압이냐’를 놓고 머리 속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계장은 “오죽하면 그랬겠느냐고 심정적 이해는 하지만 지금은 우리 사회도 민주화가 돼 청원이나 진정, 정보공개요구, 개별의원 로비활동 등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될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취재를 마치고 사진 한장 찍겠다는 요청을 이 계장은 “언론에 얼굴이 나가는 것은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평가하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사양한다”며 “그저 이렇게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알아달라”고 간곡히 거부했다.
![]() |
||||
![]() |
국회 경위의 업무는?
국회 안팎의 질서 유지와 방호를 위해 전경과 별도로 국회 사무처는 경위를 두고 있다. 전경들이 주로 국회 청사 외부의 방호 업무를 책임진다면 경위들은 청사 안팎의 질서유지를 주업무으로 한다. 경위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채로 들어온 국회 사무처의 정식 직원이다. 이 계장에 따르면 20년전에도 경쟁률이 100대1이 넘었고 요즘에도 국회 경위시험은 700대1의 경쟁률을 보인다고 한다.
경위들도 하는 업무에 따라 다시 2종류로 나뉜다. 청사 밖에서 들고 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청사 건물의 방호업무를 주로 하는 방호원과 본회의장과 회의장 질서유지를 주 업무로 하는 경위들로 구분된다. 현재 국회에는 경위 66명, 방호원 91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계장은 “우리들은 의원들과 상하관계가 아니다”며 “우리의 임무는 회의장 안팎의 질서 유지를 통해 어떻게하면 의원들에게 최상의 입법활동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계장은 “우리는 전문직으로 모두 직업적 자부심이 높다”고 덧붙였다.
|
![]() |
||
![]() |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