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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지난 6일 오후 4시께 국회 기자회견장.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이 마이크 앞에 섰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청문회 절차가 법에 위배된다.” 그는 잠시 후 같은 당 의원 4명과 다시 나타났다. “청문회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5분 남짓 뒤, 이번엔 열린우리당 의원 5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한나라당이 청문회 개최에 합의해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고 있다. 비열한 정치공세다.”
각각의 주장을 쏟아낸 두 당은 정회 3시간이 지나자 간사 접촉을 통해 청문회 산회를 결정했다. 7일 오후 2시, 전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가까스로 속개됐지만, 질의는 또다시 전날 제기된 ‘절차상 문제’에 집중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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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2 지난 5일 오전 10시 국회 기자회견장. 노웅래 열린우리당 공보부대표가 브리핑을 했다. “야당의 반대로 국정감사가 10월로 미뤄져 9월 국회는 사실상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땡땡이 국회’가 됐다. ”
오후에는 주호영 한나라당 공보부대표가 나타났다. “땡땡이 국회를 하지 말자고 국감을 10월에 하자고 한 것이다. 9월에는 인사청문회도 많고, 장관들이 대통령 순방에 따라갔기 때문에 9월에 국감을 하면 오히려 땡땡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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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정치’가 실종됐다. 교섭단체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교섭’보다는 국민을 상대로 한 ‘선동’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졌고, 상대를 인정하려 않는 정쟁만 판친다.
여야가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는 인사청문회의 절차상 문제를 놓고도 교섭은 뒷전에 둔 채 뽀르르 기자회견장을 찾아 국민들에게 서로를 고자질하는 식이다. 이미 합의한 정기국회 일정을 놓고도 서로 말꼬투리를 잡아 비방한다. 정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정치권이 나서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여야의 이런 행태는 지난 4일부터 나흘 동안 ‘바다 이야기’ 파문을 둘러싸고 벌어진 릴레이식 기자회견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4일 열린우리당은 게임업계 후원으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사행성 게임 박람회를 다녀온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과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한나라당은 5일 이 박람회에 보좌관을 보낸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과 당시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이었던 같은 당 이미경 의원을 맞제소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은 6일 박형준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고, 정청래 의원은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한나라당 조사단장인 이주영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했다. 7일엔 박형준 의원이 열린우리당을 무고죄로 맞고소 하겠다고 했다.
꼬리를 무는 제소와 고발·고소에 어지러울 정도다. 성인 오락실 파문에 대한 수습책을 마련해야 할 정치권이 서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싸움에만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다 ‘양두구육’, ‘물귀신’ 등 여야 부대변인단의 막말 논평도 끊이지 않는다.
김민영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여야가 이번 정기국회를 대선의 전초전으로 여기고 벌써부터 힘겨루기에 들어간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며 “가장 중요한 회기인 정기국회를 이번 인사청문회 파행 사태처럼 힘겨루기 식으로 진행한다면, 국회가 왜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형준 국민대 교수(정치대학원)는 “의회는 행정부 견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인데, 여당은 무조건 정부를 옹호하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하는 행태가 당연시 되고 있는 게 문제”라며 “상대 당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다선 의원들의 조정력을 존중하는 등 성숙한 관행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