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증인 채택 자제분위기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실랑이를 벌이는 재벌총수의 국감증인 채택 문제가 올해도 되풀이될 전망이다. 그러나 올해는 열린우리당 안에서 재벌총수의 증인 채택을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일고 있고, 한나라당도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 총수들이 국감장에 설 가능성은 역시 높지 않아 보인다.
14일 현재, 여야 의원들이 신청한 국감 증인들을 보면,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박삼구 금호 회장 등 4명의 재벌총수를 포함해 최고경영자 등 경제인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건희 회장은 아들 이재용 삼성 상무와 함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문제로 증인으로 신청됐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 비자금과 관련해 아들 의선씨와 함께 증인 신청 대상이 됐다.
국감 증인은 이달 안에 각 상임위 협의를 거쳐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최근 김근태 의장이 재계에 ‘뉴딜’을 제안하며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제안하는 마당에 재벌총수의 증인 채택은 적절치 않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한나라당도 반기업 정서를 우려해 재벌총수 증인 채택을 꺼리는 분위기다.
또 재벌총수들은 증인으로 채택되더라도 외국에 나가거나, 불참해 실제 증인석에 앉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지난 13일 이건희 회장이 ‘밴플리트상’ 시상식 참석차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는 국감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해에도 국감 직전 신병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떠나 이듬해 2월 귀국했다.
이와 관련해 정무위 소속 한 의원은 “총수들을 부르는 자체가 정치적 목적이 크다”며 “정책감사가 목적이라면 내용을 잘 아는 실무임원을 부르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노회찬 의원은 “국민의 대표기관이 부르는 데 몇 년째 이를 거스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 회장이 증인석에 서야만, 180조원짜리 삼성그룹 경영권 세습이 (삼성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건희 회장 몰래 이뤄졌는 지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총수를 비껴가려는 흐름 때문에 오히려 사장급 경제인의 증인 신청이 예년에 견줘 더 많아지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감증인 신청 목록에는 남중수 케이티 사장을 비롯해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 한규환 현대모비스 대표, 이수창 삼성생명 대표, 이인원 롯데백화점 사장, 신헌철 에스케이 사장 등이 줄줄이 올라 있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증인으로 신청된 것도 눈길을 끈다.
권태호 황준범 성연철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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