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자니 서민·여당 눈치…안올리자니 건보재정 걱정
열린우리당이 ‘담뱃값 딜레마’에 빠져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담뱃값을 올리자니 ‘서민들만 힘들게 한다’는 비판을 받을 게 뻔한데다, 이를 무릅쓰고 올리려 해도 야당이 반대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담뱃값을 올리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 ‘구멍’이 생겨 건강증진 사업이 줄줄이 중단되고, 결국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열린우리당 쪽 간사인 강기정 의원은 24일 “매를 맞을 건 맞아야 하는데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담뱃값은 올해 7월부터 500원을 인상하기로 이미 지난해에 짠 올해 예산안에 반영돼 있다. 정부는 “예정대로 인상되지 않으면 건강보험 재정이 4년 만에 2천억원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고 울상이지만,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을 설득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서민들이 살기 힘들다고 난리인데, 담뱃값 인상 얘기를 꺼내기가 내켜지지 않는다”라며 “올해 안에 처리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 지지율 회복이 급한 열린우리당 처지에선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의 기류가 대체로 이런 쪽이다.
그러나 당내에는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는 이도 적지 않다. 여당 복지위 관계자는 “내년의 건강보험료 자연 인상분 6.5%도 부담스러운 처지인데, 이번에 담뱃값 인상이 무산되면 구멍난 건강보험 재정을 메우기 위해 보험료 인상률을 8.5%로 높여야 한다”며 “대선을 코앞에 두고 보험료 인상은 당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사 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담뱃값 인상을 시도하더라도, 법안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지난 20일 우여곡절 끝에 복지위 법안심사 소위에 상정됐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민주노동당 등은 “흡연율 감소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수를 늘리기 위한 담뱃값 인상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복지위는 여당 10명, 야당 10명으로 구성돼 여당 단독 처리도 불가능하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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