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7일 한겨레그림판
[뉴스분석] ‘재보선 참패’ 열린우리 어디로…
명분에 쫓긴 ‘전국정당’ 자만·조급증에 좌초위기
‘반 한나라’ 호소력 없고 지역 회귀땐 더 깊은 수렁
명분에 쫓긴 ‘전국정당’ 자만·조급증에 좌초위기
‘반 한나라’ 호소력 없고 지역 회귀땐 더 깊은 수렁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26일 긴급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분발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모든 것을 새롭게 원점에서 바라보겠다”고 호소했다. 재보선 패배 책임을 둘러싼 추궁을 좀 미뤄달라는 당부다.
초선의원 모임인 ‘처음처럼’은 성명을 내어, 재보선 결과를 당 지도부만의 잘못으로 돌려선 안 된다고 김 의장을 거들고 나섰다. 그렇지만, 열린우리당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이날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정당 지지도는 열린우리당 14.1%, 한나라당 35.4%, 민주당 4.4%, 민주노동당 7.0%였다. 민심은 왜 돌아선 것일까? 열린우리당에 소생할 기회가 있을까?
열린우리당이 성공하지 못한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역’으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경상도 출신인 이목희 의원(서울 금천)은 이렇게 짚었다.
“우리는 지역주의 극복을 내세웠지만 무지하고 조급했다. 지역 토대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대의는 옳았지만 조급하고 자만했다.”
명분만 거창하게 내세웠지, 지역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그로써 발생하는 현실 정치의 여러 문제점을 속속들이 짚어내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의 다수가 이런 진단에 동의한다. 따라서 어떻게든 호남에서 다시 지지를 받아야 당이 소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열린우리당 창당 때와는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명분은 허약한데, 현실론으로 정계개편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고건 전 총리, 민주당과 합쳐 통합 신당을 만들려는 ‘새판짜기’ 움직임이 물밑에선 이미 한창 진행되고 있다.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의 ‘양해’도 있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전략가’들은 최근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민주당 의원,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국민중심당 등이 접촉 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고 전 총리 쪽은 “노 대통령과는 같이 못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노 대통령이 탈당을 거부하면 1995년 국민회의 창당 때처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새 정당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시나리오는 이미 고 전 총리와 민주당 쪽에 전달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당 안팎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껏 찾은 정계개편 명분은 ‘반한나라당’ 정도인데, 호소력이 없다는 것이 자체 평가다. 정계개편이 명분을 찾지 못하고 ‘호남 재통합’으로 읽힐 경우 내년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민병두 홍보기획위원장은 “큰 틀의, 그러나 피부에 찰싹 와서 닿는, 그런 진솔한 명제를 찾아서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1997년의 시대정신은 ‘정권교체’, 2002년의 시대정신은 ‘낡은 정치 청산’이었다. 시대정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데도, 찾기는 쉽지 않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정당은 야당을 하게 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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