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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진보학계 ‘개헌론’ 사제격돌

등록 2006-11-10 19:19

최장집교수 / 박명림교수
최장집교수 / 박명림교수
박명림 교수 “현행 헌법 무력…사법 정치화 빚어”
최장집 교수 “헌법 아닌 정당 무능…대통령 무력화”
진보개혁 성향 정치학계의 지도급 연구자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한국 정치 해법을 놓고 이론대결을 벌였다. 사제간(박 교수가 제자)인 이들은 계간 〈기억과 전망〉 가을호에 나란히 발표했다.

박 교수는 논문 ‘사회국가 그리고 민주헌정주의’에서 민주주의의 내용과 형식을 서로 의존하는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민주화의 진척이 시장 권력의 급속한 확대와 병행했으며, 그 결과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극심해졌다고 진단했다. 민주화의 이런 부정적 결과를 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내용으로 ‘사회국가’, 곧 국가가 적절히 개입해 시장 권력을 제어함으로써 양극화를 막고 삶의 질을 극대화하는 국가를 제시했다.

박 교수는 민주주의의 실속을 채우려면 거기에 맞는 적절한 형식이 필요한데, 1987년 이래 20년 지속된 현재의 헌법질서는 그 내용을 담아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질서로 판명났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87년 헌법체제’가 지닌 모순의 하나로 ‘사법기구의 정치화’를 지목했다. 법원·사법부의 과도한 권한 증대로 정치 영역에서 해결돼야 할 국가적 쟁점들이 사법부에 맡겨짐으로써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건설과 같은 문제의 최종 결정권을 사법 기구가 행사하는 것을 대표적 사례로 박 교수는 짚었다.

그는 또 ‘대통령의 5년 단임제’가 권력의 책임성·효율성·연속성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부통령제 실시 등을 제시했다.

최 교수는 논문(‘제도적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에서 헌법제도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제도는 그 자체의 학습 효과와 실천을 통해 제도를 작동시키는 관습화된 양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대와는 달리 제도변화의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실제 효과는 작을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제도 자체보다 제도 안에서의 정치적 실천이 중요하다며 문제의 핵심에 ‘정당’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의회의 다수를 얻고도 개혁을 이루지 못한 것은 “제도와는 무관하게 허약한 정당, 허약한 리더십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 권력의 허약성이 대통령이 당정분리라는 명분으로 정당정치의 책임성으로부터 멀어진 데서 비롯했다고 진단했다. 그로 인해 대통령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적 대통령’ 혹은 ‘선출된 왕’과 유사한 대통령으로 변모했고, 그것이 역설적으로 권력의 약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대통령의 정치 행위가 정당 공간을 통해 표출되어야 하며, 정당이 정치의 중심 행위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를 정치 자체의 활성화로 풀지 않고 제도개혁과 같은 정치 바깥의 힘을 통해 해결하려는 접근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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