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세력관계
‘김근태+정동영 국민 신당 합의’
‘노 대통령과 대결’ 불가피…내부조직 다잡아 ‘집단탈당 차단’ 포석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이 28일 ‘원칙 있는 국민 신당’이라는 깃발을 치켜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에겐 ‘신당 논의에 개입하지 말라’는 분명한 ‘경고장’을 날렸다. 경쟁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40여분만에 4개 항의 합의문을 내놓았다. 두 사람의 공개적인 만남은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처음이다. 합의문에서 “‘국민의 신당’이 어느 누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자율적, 독립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명시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의 만남에 배석했던 우상호 대변인은 ‘어느 누구’가 누구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말 안해도 누군지 잘 알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문구라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정계개편 논의에서 손을 떼라는 요구인 셈이다. 두 사람의 공동전선은 최근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선 주자들의 ‘차별화 전략’에 강한 경고를 던진 데 대한 응수의 성격을 띤다. 노 대통령이 ‘통합신당은 지역주의 회귀’라는 식으로 신당 논의에 지속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설 땐 두 사람이 그냥 침묵만 지키진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이번 합의를 ‘노 대통령과의 정치적 결별’로 해석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노 대통령과의 정면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오른쪽)과 정동영 전 의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만나 통합신당 문제와 관련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두 사람이 공동보조를 맞춘 데는 ‘동변상련’의 정서적 유대감과,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 같다. 두 사람의 지지율은 합해야 고작 5% 안팎이다. 이대로라면 둘이서 경쟁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강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는 어려운 처지다. 두 사람이 통합신당 성격을 ‘원칙있는 국민의 신당’으로 규정한 것은 고건 전 총리에게 통합의 주도권을 쉽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내 통합파 의원들의 상당수가 통합의 중심 축으로 고 전 총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협력해 통합신당의 주도권을 확보함으로써 고 전 총리 쪽으로 쏠리는 움직임을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더구나 최근 정계개편 논의 과정에서 양대 계파 의원들의 결속력이 느슨해지는 등 두 사람의 당내 입지가 현저히 약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두 사람이 신당 추진에 다부진 의지를 나타낸 것은 와해 직전의 내부 조직을 다잡으려는 의도도 있는 것이다. 전병헌 의원은 “두 사람의 회동으로 통합신당파 의원들이 안정감을 갖게 됐다. 집단 탈당을 하지 않고 대오를 정렬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회동에 앞서, 당내 중진 그룹들과의 연쇄 접촉을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정동영 전 의장은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김원기 전 국회의장, 조세형 상임고문, 김한길 원내대표, 문희상·김혁규·천정배 의원 등과 만났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통합 추진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 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당내에는 여전히 “(신당의 중심으로) 두 사람으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두 사람의 만남이 고건 전 총리를 자극해 양쪽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여권의 정계개편은 가속도가 붙었지만 그만큼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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