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과 함께 ‘1일 여행’…밤늦게 집으로
한나라 탈당전 잠적했던 ‘라자로마을’ 등 찾아
한나라 탈당전 잠적했던 ‘라자로마을’ 등 찾아
경선 일정 중단 이틀째인 20일 ‘잠행’에 나섰다는 손학규 후보는 온종일 취재진과 숨바꼭질을 거듭하며 언론에 노출됐다. 잠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사실상의 ‘기획 잠행’ ‘반공개 잠행’으로 부를 만하다.
이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던 손 후보는 15시간 만인 밤 10시 조금 넘어 서울 마포 집으로 돌아왔다. 손 후보는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에게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하고 기도했다. 내일 아침에 모든 입장을 밝히겠다”고 짤막하게 말한 뒤 들어갔다. 서울 여의도의 손 캠프 사무실은 후보의 복귀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참모들은 기자회견문을 작성하고 예상 질의 응답의 답변 수위를 조절하는 등 밤늦게까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에 앞서 손 후보는 이날 아침 7시40분께 간편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부인 이윤영씨와 함께였다. 손에는 김지하 시인이 새로 낸 기행문집 <예감>이 들려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김주한 캠프 공보팀장은 “등산을 하거나 멀리 떠날 채비를 갖추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손 후보는 부인 소유의 검은색 ‘마티즈2’ 승용차를 손수 운전해 인근 합정동의 절두산 순교성지를 찾았다.
손 후보는 잠시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올렸고, 김대건 신부상 앞에서는 1~2분간 묵상했다. 가끔 메모를 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후 손 후보는 취재진을 따돌리려 차선을 이리저리 바꿔 가며 서부간선도로를 거쳐 서해안고속도로로 차를 몰았다. 손 후보 부부는 오전 10시께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남양성모성지에 들러 기도와 산책을 했다. 이곳에서 만난 초등학생들과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곳에서 취재진과 맞닥뜨린 손 후보는 “분노가 좀 풀렸느냐”, “내일 여의도에 돌아올 것이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답답한 듯 “은행잎이 벌써 누레지기 시작했다”, “꽃이 아름답네…”, “좋은 가을이야…” 등 선문답을 되풀이했다. “내일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느냐”는 물음을 받고는 “잘 되지 않겠느냐”고 막연한 대답으로 피해 갔다.
경기도 일원을 돌고 난 손 후보는 이날 오후 의왕시 오전동에 있는 성라자로마을에서 다시 기자들과 마주쳤다. 지난 3월 한나라당 탈당 전 잠적했을 때 들렀던 곳을 다시 찾은 것이다. 굳은 얼굴로 연이은 질문에 침묵하던 손 후보는 “오늘 마지막 기도를 하고, 내일 아침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손 캠프 사무실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하루 종일 후보의 향후 행보에 촉각을 세웠다. 상황실장인 설훈 전 의원, 조직총괄본부장인 이호웅 전 의원 등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했고, 의원들도 통합신당 지도부와 정동영 후보 쪽에 대한 압박을 이어갔다. 강희철 김태규 기자, 연합뉴스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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