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통합민주당의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는 비리·부정 전력자의 공천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공천 기준에 합의하고 최고위원회에 공을 넘겼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공심위의 한 관계자는 이를 ‘치킨게임(상대방이 물러날 때까지 정면충돌을 감수하는 게임)’에 비유하며, 비관적인 전망을 드러냈다.
■ 오전 10시= 박재승 위원장은 공심위 회의에 앞서, 작심한 듯 금고 이상의 모든 형사범을 공천에서 제외하겠다는 자신의 ‘소신’을 25분 동안 강한 어조로 토해 냈다. 박 위원장은 1972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을 통해 8명이 사형당한 ‘사법살인’의 역사를 예로 들며,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견제세력 확보가 안되면 국민들이 과거 독재정권에서 겪었던 고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것이 전부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위기에는 자기 욕심을 버려야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대상자들의 ‘희생’을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여기 심사위원 12분이 앉아 계시지만 제 말씀에 공감하시는 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성인들 아닌가”라며 “혹시 자기도 모르게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분 아니라면, 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직시하고 계신 분이라면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헤아릴줄 아는 분이라면 논리를 대라”며 위원들을 압박했다. 박 위원장의 ‘직격 발언’에 기선을 제압당한 당 내부 공천심사위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 오후 2시30분= 오후 일정을 전부 취소한 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가 급히 당사를 찾았다. 박 위원장의 회동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원칙’을 두 대표에게 설명하면서 ‘협조’를 구했다. 30분 정도의 회동이 끝난 뒤, 유인태·박명광 최고위원이 손 대표를 찾았다. 유 의원은 “우리로서는 그걸(박재승 위원장 안)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오후 6시= 국회 당 대표실에서 최고위원회가 소집됐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개인비리가 아닌, 당을 위해 책임을 진 인사들은 개별 심사를 통해 구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됐다. 비슷한 시각에 박 위원장은 “공심위에서는 전원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 오후 11시30분= 박경철 공심위 홍보간사는 “공심위에서는 예외 없는 원칙을 지킨다는 안으로 단일화했고, 공심위가 결의할 수 있지만 최고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며, 공을 최고위원회로 넘겼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손학규 대표와 김원기 전 국회의장, 정균환, 박명광, 유인태 최고위원 등은 당사를 찾아 대책회의를 열었다. ‘선의의 피해자, 억울한 사람은 없게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공심위 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공심위와 최고위원회의 대립이 더욱 첨예해지는 순간이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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