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21일 오후 서울 외교통상부 청사 리셉션홀에서 열린 주한외교단 초청 리셉션에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대표에 외교결례 파문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21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에게 ‘외교적 결례’까지 범한 것은 한-미 현안인 쇠고기 문제에 발벗고 나섰다가 ‘선’을 넘어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21일 버시바우 대사의 통화는 전날 이명박 대통령과 회동에서 쇠고기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인 손 대표에 대한 강한 항의 표시였다. ‘실망’이라는 자극적인 표현까지 사용한 버시바우 대사는 “과학적 근거도 없이 국민들에게 불안을 야기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는 말도 건넸다. 국민여론에 힘입어 재협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야당을, 여론을 선동하고 호도하는 세력으로 규정한 셈이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지금 얘기하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따진 뒤 “쇠고기 협상이 이런 상황에 처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가 난국에 처한 것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 대사가 야당 대표에게 이런 식으로 전화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사로서 나에게 찾아오든지 면담을 하든지 편지를 보내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고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전했다.
이에 앞서 버시바우 대사는 정부가 미국과의 ‘추가협의’ 내용을 발표한 20일에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단을 만났다. 국회를 찾아 안상수 원내대표, 이한구 정책위의장 등을 만난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의 도축장과 수출업자가 한국 수입업자의 요청에 의해 쇠고기 월령을 표시하는 것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선물’을 주기도 했다. 쇠고기 재협상을 막기 위해, 퇴임을 앞둔 주재국 대사가 마지막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대미 굴종외교가 낳은 불상사라고 보고 있다. 미국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저자세 때문에 주재국 대사가 야당 대표에게 ‘총독’ 같이 군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최재성 원내 대변인은 “쇠고기 협상과 정상회담을 통한 저자세에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를 만만하게 본 것이다. 마치 한-미 관계가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라며 “대한민국의 국격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합당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가 ‘사적 대화’라고 해명한 데 대해서도 차영 대변인은 “손 대표와 버시바우 대사는 사적으로 대화하는 관계도 아닐 뿐더러 쇠고기 문제가 사적인 문제도 아니다”라며 “전국민의 불안감이 팽배해 있고 한-미 중대현안이 된 쇠고기 문제에 대해 미국 대사가 야당 대표에게 항의한 것이 어떻게 사적 대화가 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쇠고기 문제로 여야간 간극이 벌어지더니, 마침내 미국 정부와 야당 사이에서도 심상찮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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