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겉으론 격앙했지만 속으론 ‘고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여야 사이를 오가다가 이번에는 한나라당과 한 배를 탔던 자유선진당은 스타일을 크게 구겼다. 추경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간 두 야당의 모습이다.
민주당은 12일 긴급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열어 한나라당 쪽에 △불법 날치기에 대한 대국민 사과 △재발 방지 약속 △국회 예산결산특위 이한구 위원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정세균 대표는 최고위 회의에서 “전두환 시대에나 있었던 예산안 날치기가 살아났다”, “예산안 날치기는 의회민주주의의 후퇴이고 과거로의 회귀”라며 한나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신학용 원내 부대표는 “순천자(順天者)는 살아남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는 옛말을 깊이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조정식 원내 대변인은 이번 추경안 통과 무산을 ‘18대 국회 최고의 한나라당발 망신극’이라고 꼬집었다. 예결위 회의장 현장에서 정족수 미달을 간파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단초를 제기한 실무 당직자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힘을 합쳐 추경안을 통과시키려 했던 자유선진당은 한나라당이 겪은 망신도 공유하게 됐다. 자유선진당은 11일 오전부터 한나라당과 긴밀하게 협의해 ‘서민용 전기 및 가스요금 안정화 사업’을 지원하는 조정안에 합의했다. 자정이 넘어서는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한나라당을 도와 류근찬 의원이 예결위 전체회의 의결에도 참여했다. 민주당을 배제한 한나라당의 추경안 통과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지만, 사·보임 ‘시간차’로 인한 정족수 미달이라는 치명적인 실수까지 막지는 못했다. 제3당으로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려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물거품이 된 것이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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