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 명분만 쌓아줘...국회파행 빌미 제공
김형오 국회의장이 30일 저녁 8시40분께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직권상정의 길을 열었다. 결국 법안 연내 처리를 고집해 온 한나라당에게 명분만 제공하고, 국회 전면 파행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 의장은 지난 29일 민주당을 향해 “의사당 내 점거농성을 29일 밤 12시까지 조건 없이 풀지 않으면, 국회의장으로서 취할 수 있는 질서회복 조처를 취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역구인 부산에 머물던 김 의장은 이날 오전 서울로 돌아와 원내대표회담을 챙기며 질서유지권과 직권상정 시점을 저울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요청한 85개 법안 전체 목록과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30여건 등을 놓고, ‘시급성’을 기준으로 직권상정할 법안을 정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의장이 어떤 법안을 31일 직권상정 대상으로 확정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명운은 물론 여야의 이해득실도 크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 스스로 지난 29일 설정한 기준은 ‘여야합의 민생법안’이다. 이를 엄밀히 적용할 경우 한나라당이 야당과 협상에서 합의처리 의사를 밝힌 국정원법 등 이른바 사회개혁법안 13개, 2월 협의처리를 제안한 방송법 등 7개 언론관계법, 그리고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은행법 등은 직권상정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방송법, 은행법 등 한나라당이 요구한 핵심 법안들이 직권상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물리력을 동원해가면서까지 법안을 강행할 실익이 없다며 발을 빼고 있어 고민이 깊다. 자칫 ‘청와대의 꼭두각시’라는 야당의 반발을 감수하며 질서유지권을 발동했지만, 정작 여당의 환영도 받지 못하는 난감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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