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왼쪽)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중진연석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뒤)에게 손을 내밀어 맞이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비정규직법·언론관계법 등 합의점 필요”
밀어붙이기 부작용에 박근혜 발언 한몫
친이계 반발…내부갈등 깊어질 가능성
밀어붙이기 부작용에 박근혜 발언 한몫
친이계 반발…내부갈등 깊어질 가능성
한나라당의 쟁점법안 처리 기류가 일부 바뀌고 있다. 앞뒤 살피지 않고 청와대의 속도전 주문에 휘둘리다 역풍에 부닥치자, 뒤늦게 한 걸음씩 후퇴해나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최근 노동계와 갈등을 빚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4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비정규직법은 시한을 정해서 입법을 밀어부칠 사안이 아닌 민생현안”이라며 “최선을 다해 한국노총과 대화를 하고 의견접근을 이룬 뒤, 합의점을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 의장은 지난달 24일 당·정·청 회의 이후 “올 상반기에 ‘해고대란’이 예상되는 만큼 매우 시급히 처리해야한다. 4월 국회에선 처리가 어렵다”며 2월 처리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바 있다. 한 당직자는 “비정규직법은 대통령 특별 지시사항”이라고 귀띔했다. 한나라당은 절차가 복잡한 정부입법 대신 의원입법 형식으로 제출하기로 방침을 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장 노동계가 ‘전쟁’을 선언했으며, 일부 여당 의원들이 반발했다. 홍준표 원내대표까지 “정부가 사용기간을 늘리자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되면 노동계 반발이 극심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결국 청와대 드라이브에 떠밀려 시동을 걸었던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지도부 내 의견차만 드러낸 가운데, 2월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입법전쟁’의 최대 쟁점인 언론관계법과 은행법 등과 관련해서도 ‘탄력적 대응론’이 떠오르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대기업·신문사의 지상파 진출 허용이 핵심인데, 최대 20%까지 허용한 지분율을 크게 낮추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박종희 의원도 이날 “산업자본(기업)의 은행지분 소유한도를 야당과 협상에서 절충할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지난해 말 국회 파행의 빌미를 제공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은 아예 4월 이후로 처리가 미뤄졌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의 한 재선의원은 “청와대와 당지도부가 밀어붙인 ‘속도전’의 부작용을 체험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여기에 최근 박근혜 전 대표의 “쟁점법안일수록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발언도 당내 ‘밀어붙이기’ 분위기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한 친박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주장한 게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고, 그게 바로 민심”이라며 “박 전 대표의 문제제기가 강행 처리 분위기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친이 직계 의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대통령이 올해 본인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려고 하는데, 국회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며 정반대 시각을 드러냈다. 여권 내부 갈등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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