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오른쪽)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제헌절 경축식을 마친 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운데),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 등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여야 타협 안되면 고뇌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장 이후 입지 등 고려 ‘여권 눈치보기’
국회의장 이후 입지 등 고려 ‘여권 눈치보기’
김형오 국회의장이 방송법 등 언론관련법의 직권상정 의지를 본격적으로 내비쳤다. 김 의장은 17일 <엠비엔>의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나와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이 더 이상 안 된다고 한다면 또다시 고뇌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전날 여야 원내대표에게 언론관련법 본회의 표결을 전제로 ‘6월 임시국회’ 회기 연장을 제안했으나, 민주당이 이를 거부하자 직권상정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는 모양새다. 김 의장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소탐대실하지 말고 협의해주기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김 의장의 ‘친정’인 한나라당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국회 당시엔 관련 법안이 제출된 지 1주일밖에 안 된데다 강행처리에 대한 당내 반대가 만만치 않아, 김 의장이 거부할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방송법 수정안 준비를 통해 ‘양보’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김 의장에게 연일 직권상정을 압박하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이날 △신문사·대기업의 지상파 진출 2013년 이후 유예 △시청점유율 30% 제한 등 사후 규제를 추가한 수정안 일부 내용을 공개하면서 “더 이상 문방위 소집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공을 의장에게 넘겼다. 앞서 국회 문방위원장인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도 <불교방송> 라디오 ‘김재원의 아침저널’에 나와 “본회의에서 ‘원샷’에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국회의장 임기 이후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그가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요구를 뿌리치기 어려운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5선의 김 의장은 내년 임기를 마친 뒤 의장 연임 또는 한나라당 당대표 출마 쪽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장의 정치적 진로가 청와대와 한나라당 의원들의 손에 달린 셈이다. 이런 현실적 한계 탓에 여권의 직권상정 요구를 마냥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김 의장이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를 허용할 경우 야당으로부터 받을 ‘날치기 의장’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 부담이다. 박병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김 의장이 직권상정할 경우 김 의장은 앞으로 본회의 사회를 보지 못할 수 있다”며 “민주당은 김 의장이 사회를 보는 본회의에 대해 전면 보이콧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여야는 제헌절인 이날도 지루한 대치를 이어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8일 오전 10시까지 본회의장에 각각 의원 3명만을 남긴 채 일단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