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명 대표’된 이유는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한 측근은 11일 “홍 전 대표의 퇴진은 박근혜 전 대표가 도와주지 않고 발을 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심층적인 분석은 못 된다. 그보다는 홍 전 대표가 시대 요구를 거스른 채 낡은 정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5개월 최단명 대표라는 불명예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는 그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친이계의 지원을 받은 원희룡 의원을 이기고 당권을 쥔 것은 정치권의 쇄신 요구에 힘 입은 덕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표가 된 직후 첫 공식행사로 참여연대를 방문해 “서민정책에는 진보 보수가 없다”고 선언하는 등 초기에는 ‘홍준표식 정치’를 선보였다. 추가감세 철회와 내곡동 사저 백지화, 개성공단 방문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홍 전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이미 시대의 화두가 된 복지 확대를 좌파정책이라고 맹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이념이 불분명한 후보”라며 박원순 후보에 대한 색깔론을 직접 제기했다. 수도권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날 “한나라당 잘못으로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누가 봐도 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는데 홍 전 대표가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무리수를 뒀다”며 “그런 분위기가 한나라당 의원 비서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라는 황당한 생각을 부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국민보다는 권력의 눈치를 살피고, 대화보다는 대결의 정치에 의존한 것도 민심, 나아가 당심을 잃는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여야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 처리를 놓고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인 상태에서 홍 전 대표는 날치기 처리를 주도했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청와대와 계파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대표가 되겠다고 했던 대국민 약속을 일관되게 실천했더라면 정치 발전에 기여했을 텐데 아쉽다”며 “앞으로 누가 한나라당을 맡든 낡은 정치의 유혹을 떨쳐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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