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직 버렸지만 의원직은 그대로 박희태 국회의장이 돈봉투 파문으로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난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 앞으로 국회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회의장 첫 ‘불명예 퇴진’
퇴진 완강히 거부하다
비서 실토에 결단한듯
지시 여부는 묵묵부답
퇴진 완강히 거부하다
비서 실토에 결단한듯
지시 여부는 묵묵부답
박희태 국회의장이 돈봉투 파문으로 결국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났다. 박 의장은 9일 한종태 국회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사퇴문에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저는 큰 책임을 느끼며 의장직을 그만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고승덕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월 초 2008년 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박 의장 쪽으로부터 현금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받았다고 폭로한 이후 박 의장은 줄곧 퇴진 압력을 받아왔지만, “나는 무관하다” “기억이 희미하다”며 사퇴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야당이 국회의장 사퇴촉구결의안을 내고 여당에서조차 의장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최근까지도 예정된 해외순방을 검토하는 등 임기 말(5월29일)까지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뜻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고승덕 의원의 진술 이외에 물증이 없으니 끝까지 버티면 검찰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믿었던 동향 출신의 전 비서 고명진씨가 책임을 떠안던 그간의 태도를 바꿔 ‘윗선’을 대기 시작했다. 박 의장의 사퇴는 고명진씨가 “고승덕 의원 쪽에서 돌려받은 돈을 내가 썼다”고 했던 애초 주장을 바꿔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 이뤄졌다. 김효재 수석이 검찰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고 자신에게도 직접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에 이르자, 박 의장도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의장직을 사퇴해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으로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수석이 돈봉투에 관여된 것이 확인될 경우 박 의장이 돈을 돌린 것을 보고받았는지, 또 돈 출처가 어딘지 등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박 의장도 검찰의 소환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국회의장이 임기 도중에 물러난 것은 이승만, 이기붕, 백두진, 박준규 전 의장에 이어 다섯번째이며, 비리관련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것은 박 의장이 처음이다.
검사 출신으로 1988년 민정당에 들어와 정치를 시작한 박 의장은 정치인생 20여년 동안 최장수 대변인과 법무장관, 여당 대표 등 요직을 다 거쳤다. 특히 민정당과 민자당 대변인 시절에는 순발력과 재치로 “정치 9단”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등의 정치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영광 못지않게 굴곡도 많았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초대 법무장관으로 임명됐으나, 미국 국적을 가진 딸의 대학 입학 특혜 사건 등으로 열흘 만에 물러나야 했다. 또 2008년 18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는 아픔도 겪었다. 그해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복귀했고 이듬해엔 경남 양산 재보궐선거에 당선돼 후반기 국회의장이 됐지만, 그의 복귀는 결국 자신의 정치인생을 망치는 원인이 됐다.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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