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17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를 찾아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 부조 앞에 향을 사르고 있다. 연평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핵심당직 ‘돌려막기’ 여전…‘안보·경제 무능’ 강박증세
호남 배려와 연평도 방문으론 낡은 정당 탈피 어려워
호남 배려와 연평도 방문으론 낡은 정당 탈피 어려워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헬기를 타고 연평도에 방문하는 안을 결정했다. 같은 날, 제자리에서 맴도는 헬기의 프로펠러처럼 김 대표는 자신의 측근 당직자를 다른 핵심 당직에 앉히는 ‘돌려막기 인사’를 발표했다. 비교적 온건 성향의 한 의원의 말마따나 “이걸 당직개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인사였다.
김 대표는 지도부와 함께 17일 연평도에 들어가 북한 포격에 희생된 장병들의 위령탑이 있는 평화공원에서 헌화하고, 해병대 부대원들 앞에서 “필승” 구호도 외쳤다. 그는 또 “평화를 파괴하는 일체의 무력도발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햇볕정책의 원칙이고, 민주당이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연평도 방문은 ‘안보무능·종북 의심세력’이라는 여권의 공세를 극복하려는 성격이 짙다. ‘민주당은 뭔가 불안한 정당’이라는 인식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민주당이 ‘안보 유능정당’임을 내세워 지지층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민주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최근 민병두 의원이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을 그만두며, “지지자 중심 정치”를 하지 말고, “다수파 정당”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한 것도 ‘지지층 확장’의 고민에서 나온 발언이다. 그는 민주당이 ‘국민통합 대북정책’을 제시하고, 동반성장에 동의하는 대기업의 성장까지 자신있게 얘기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 못지 않게 민주당의 혁신을 위한 방안과 노력도 또렷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누리당이 끊임없이 민주당을 ‘안보·경제무능론’으로 가두며 차별화를 꾀하려 하지만, 사실 일반 여론 흐름엔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이나…’라는 인식도 강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던 한 대학 교수는 “매년 입학하는 학생들을 만나보면, 민주당도, 새누리당도 모두 낡은 정당, 구태정당으로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한길 대표는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활을 건 혁신’을 내걸면서도, 그런 의지를 넘어서는 혁신의 구체성까지는 보여주지 못했다. ‘어떻게’라는 물음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뒤따르지 않은 탓이다. 분파주의 극복, 상향식 공천과 같은 과제를 말하긴 했지만, 민주당을 낡은 정당으로 보는 이들에게 민주당이 ‘새로워지고 있다’는 체감을 주기에는 부족해보였다. 당의 정책·전략을 고민하는 민주정책연구원에서 혁신안을 고민하고 있으며 향후 그 방안들을 실천하더라도, 상징성이 큰 신년 회견에서 ‘당이 이렇게 달라지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특히 당직개편은 혁신을 다짐한 김 대표의 의지를 엿보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스포츠에서 코칭스태프를 바꿔 팀의 변화의지를 드러내듯, 보통 정당들도 전면적인 당직개편을 통해 혁신의 신호를 당 안팎에 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자신의 당 대표 비서실장을 당의 살림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으로 재배치하고, 기존 수석대변인을 자신을 수행하는 비서실장으로 임명해 다시 곁에 두었다. 특히 당 대변인은 당의 입이자, 얼굴 구실을 하기 때문에, 당의 활력과 새로움을 전할 수 있는 인물을 심사숙고해 임명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 정치인 이미지가 강하고, 대중성이 떨어지는 전남도당위원장인 이윤석 의원을 수석대변인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당 곳곳에서 “외부에 무슨 개혁적 메시지를 줄 수 있나?”라는 수군거림도 들린다. 이 의원은 김 대표와 가까운 의원이다. 설령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직의 책임을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 때문에 ‘측근배치·돌려막기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더라도, 당내를 설득하고 이를 돌파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민주당에선 김한길 체제 ‘2기 당직’ 발표 이후, 정균환 신임 최고위원(전북 고창)과 이윤석 수석대변인(전남 무안·신안), 김관영 비서실장(전북 군산)이 호남 출신이며, 현재 지역구가 서울인 최재천 신임 전략홍보본부장조차 고향이 전남이라며 호남을 배려한 당직인선이라는 해석까지 내놓았다. 호남에서 ‘안철수 바람’을 차단하고, 민심 이탈현상을 막으려는 조처의 하나로 보인다.
민주당도 호남 배려 당직인선만으로 호남 민심을 잡을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겠지만, 당직개편에 대한 이런 낯뜨거운 해석을 넘어 구체적인 혁신안으로 집권의 신뢰감을 주어야 떠나가는 호남 민심도 고개를 돌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민주당이 거리로 내몰리는 ‘노동’, 고단해진 ‘서민과 민생’을 유능하게 대변하는 정당으로 체질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당 안팎에서 나온다. 진보정당의 위기, 중도·보수까지 껴안으려는 ‘안철수 세력’의 지향점 때문에 노동·서민을 제대로 대변하는 정치가 공황상태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그 공간을 채우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결국 17일 기상악화로 헬기를 타지 못하고 고속부양정을 타고 연평도를 힘겹게 방문했다. 여권의 공세를 선제적으로 극복하려고 어떻게든 연평도를 가겠다는 민주당 지도부를 기다리느라, 연평도 일부 부대원들은 예정시간보다 20분 남짓 늦게 김한길 대표와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문득 그 젊은 부대원들은 ‘과연 그날, 달라지는 민주당을 보았을까’라는 궁금함이 스쳤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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