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서를 하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3개월 전 장관에 임명된 그로서는 첫 국정감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13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초보 장관’을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첫번째 질의에 나선 김재경 의원부터 “미래에 먹고살 거리가 뭐냐”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이재영 의원은 미래부가 예시했던 창조경제 아이템을 “대학 동아리에서 나올 수 있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마이크만 잡으면 확 달라지는 것이 정치인들의 속성이다.
2014년 국정감사가 두번째 주로 접어들며 달아오르고 있다. 국회는 이번주에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감사원, 헌법재판소, 금융위원회, 서울시교육청을 감사한다. 꽤나 중요한 기관들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국정을 감사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며 국정감사 제도를 폐지했다. ‘견제받지 않는 통치’를 우리는 독재라고 부른다. 국회 국정감사는 16년 뒤인 1988년 부활했고 지금까지 27년째 이어가고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들으며 직원으로부터 답변 자료를 건네받고 있다. 세종/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회의원들에게 국정감사는 ‘한해 농사’나 다름없다. 정부 기관의 잘못된 정책이나 문제점을 찾아내 제대로 폭로하면 능력있는 국회의원으로 인정받는다. 다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보좌관의 역량도 여기서 갈린다. 보좌관의 임무는 폭로거리를 찾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에서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보좌관들은 능력과 인연을 총동원해 언론에 ‘기사 세일즈’를 한다. 기자들도 국정감사 시즌에는 ‘큰 건수’를 찾아 사냥에 나선다.
의원실과 언론사 사이에 거래가 성사되면 의원실은 언론사에 정보를 독점 제공하고 언론사는 그 기사를 돋보이게 보도한다. 언론에서 ‘특종’이나 ‘단독’이라고 보도하는 국정감사 기사의 대부분이 이런 유통 경로를 거친다. 국정감사 기사는 과거에는 정치부 기자들이 주로 썼지만 지금은 전문성이 있는 경제부·사회부 기자들이 많이 쓴다.
‘단독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수많은 국정감사 자료는 보도자료로 뿌려진다. 하루 평균 200개가 넘는 보도자료가 전자우편으로 기자들에게 전달된다. 국회 기자실 복도 탁자에는 국정감사 기간 내내 의원실에서 가져다 놓은 보도자료가 수북이 쌓인다. 기사 한 줄이 아쉬운 보좌진들은 직접 각 언론사 부스를 돌며 기자들에게 자료를 나눠주기도 한다. 늘 시간에 쫓기는 대부분의 기자들은 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래도 보좌진들은 “잘 부탁한다”며 자료를 돌린다.
감사의 주체인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로서는 현재의 국정감사 시스템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감사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의원실에서 내놓는 보도자료를 자세히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내용이 많다.
일요일인 12일 밤 전자우편 자료 몇개의 제목을 살폈다.
‘연구장비 관리부실로 2조700억 손실’(우상호)
‘한국학중앙연구원 편중인사 도 넘었다’(유은혜)
‘국토교통부 정밀안전진단 미실시 시설물 과태료 0건’(이우현)
‘FTA로 해외조달시장 확대 홍보하더니 0.002% 진출’(이한구)
‘100가구 중 66가구가 중산층 - 통계청 지표와 체감 현실 괴리’(조명철)
‘조달청, 관피아 기관에 54억원 용역 일감 몰아주기’(윤호중)
평소라면 언론에서 뉴스나 기획으로 크게 다뤄도 전혀 손색이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도자료는 거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다. 엄청난 분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정도면 국회가 국정감사라는 본연의 임무를 그런대로 잘 수행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현행 국정감사 제도에 대한 행정부와 학계, 언론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국회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가혹할 정도다. 여야의 논쟁에 끼어들어 시시비비를 가려주지 않고 양비론으로 국회와 의원들을 비난한다.
환경부 국정감사가 열린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여야 의원들이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기업 총수들의 국감 증인채택 문제를 두고 대립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가 정회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국감 첫날 환노위의 12시간 정책질의는 0건’
‘국정감사 언제까지 막말과 파행으로 이어갈 건가’
‘국회의 권한과 기능을 줄이자’
‘막말에… 호통에… 국감 첫날부터 파행’
‘2014 국정감사 이틀째 파행 구태’
‘맥빠지는 초반 3탕 국감 - 맹탕, 재탕, 허탕’
왜 이렇게 비난 일색일까? 물론 제도에 문제가 있다. 21일 동안 672개 피감기관을 감사한다는 것은 무리다. 제도는 고치면 된다. 여야는 올해 국정감사를 두 차례로 나눠서 진행하는 ‘분리국감’을 하려고 했지만 세월호 특별법 합의가 지연되면서 실패했다. 내년에는 하면 된다. 길게는 ‘분리국감’을 거쳐서 ‘상시국감’으로 가야 한다. 명색이 국정감사인데 정부를 무조건 감싸고도는 여당 의원들의 행태는 잘못된 것이다. 증인에게 고함을 치고 윽박지르는 야당 의원들도 확실히 문제가 있다. 고쳐야 한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 국회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적대감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혹시 반정치 프레임을 확산시켜 반사이익을 얻는 기득권 집단에 언론도 알게 모르게 가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 선거가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국회와 정당이 바로 서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없다. 국회와 정당을 바로 세울 직접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지만, 길게 보면 유권자들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정치 프레임으로 정치와 유권자를 이간하는 기득권 세력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뉴스를 통하지 않고 국정감사를 실제로 지켜보면 꽤 재미있다. 의원과 증인의 ‘밀당’(밀고 당기기)에는 늘 긴장이 감돈다. 누가 핵심을 찌르는지, 누가 물타기를 하는지 평가해보는 것도 유익하다. 국회방송이 요즘 거의 온종일 국정감사 중계를 한다. 지금 채널을 맞추면 볼 수 있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