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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박 대통령의 발본색원 통치술, 그 연원

등록 2014-11-04 20:51수정 2014-11-05 08:57

성한용 선임기자의 현장칼럼
‘퍼스트 레이디’ 시절부터 뿌리박힌 박 대통령의 이분법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당입니다. 정당해산 심판 청구 변론에서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인 것처럼 우리 정부가 해석하는 것을 보고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당해산은 국민의 심판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권영길 전 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세 차례 출마했던 사람이다. 1997년엔 ‘건설 국민승리 21’ 후보로, 2002년과 2007년엔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런 그가 4일 오후 아픈 몸을 이끌고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나와 증언을 했다. 헌법재판소는 앞으로 추가 서면 검토와 청구인 및 피청구인의 최종 변론으로 변론을 종결하고 최종 선고를 하게 될 것이다.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를 한 것은 정확히 1년 전인 2013년 11월5일이다. 당시 법무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안전한 국가, 행복한 사회, 희망의 새 시대’라는 법무행정 비전과 국정 목표가 쓰여 있다. 지난 1년 동안 과연 국가는 안전해지고 사회는 행복해졌을까?

1년이 지나 다시 들여다본 법무부 자료에는 너무나 이상한 내용이 많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반국가활동이라고 법무부가 주장한 ‘이석기 등이 관여한 아르오(RO) 조직의 내란음모·선동 행위와 일심회 간첩단 사건’은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석기 사건’ 2심 법원이 아르오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부정경선 등으로 민주적 선거제도를 부정하고, 국회 본회의 최루탄 투척, 5·12 중앙위원회 집단폭력 등으로 의회주의 원칙, 정당민주주의에 반하는 활동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사안은 개별 법률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당해산까지 할 일은 아니다.

법무부 자료에는 ‘통합진보당을 없애버리고야 말겠다’는 식의 강렬하고 자극적인 용어가 가득하다. ‘반국가활동의 토대 붕괴 필요’, ‘진보를 가장한 자유민주체제 위해 세력을 국민으로부터 격리’ 같은 표현들이 그렇다. 법률과 논리가 가득해야 할 법무부 자료에 선동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2015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 귀빈식당에서 여야 지도부와 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박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2015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 귀빈식당에서 여야 지도부와 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박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의 배경을 ‘배제와 포섭의 통치술로서의 종북 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누구든지 체제에 반대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체제 권력의 주체로부터 빨갱이로 규정되어 비국민으로 배제되는 ‘48년 체제’의 부활이라는 분석이다. 그 효과는 통합진보당을 “‘알짜배기 종북’으로 선언함으로써 ‘주변부적인 종북’(진보)들에게 스스로를 그들과 분리시키고 그들의 생명성을 부정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빨갱이 사냥과 지금의 종북몰이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얘기다.

그럴까? 그렇다. 종북몰이의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통합진보당을 배제와 척결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6월 이석기·김재연 의원 사퇴 및 제명 논란 당시 “국회라는 곳이 국가의 안위를 다루는 곳인데,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있고 국민들도 불안하게 느끼는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일이 있다.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지배자적 사고는 사실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974년 어머니가 숨진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박정희 유신체제의 중심에 있었다.

“우리 사회 전체에 충과 효와 예를 바탕으로 한 새마음의 바람이 불어올 때 우리 모두는 새마음의 옷으로 갈아입게 되고 따라서 가정은 가정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일터는 일터대로 바람직하고 참된 풍토에 싸이게 될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물여섯살이던 1978년 9월1일 ‘새마음 갖기 결의 실천 경기도 노인대회 및 대학생연합회 도지부 발대식’에서 격려사로 했던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일평생을 살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하면 바르게 이 세상을 살아가느냐, 즉 건강한 양심을 한평생 지니고 사느냐에 골몰해야 할 것입니다.”

스물다섯살이던 1977년 10월18일 ‘새마음 갖기 강원도 도민 궐기대회’에서 한 말이다.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일기에는 근본주의와 선악이분법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 악한들의 그치지 않는 도전과 방해 속에서도 끝끝내 올바름을 잃지 않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그 주인공의 태도가 왜 그때 그토록 마음에 감동을 주었을까. 내가 겪었고, 겪고 있는 인생 행로 또는 고통과 흡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1990년 1월10일)

좀 무섭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도 극단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쳐부숴야 할 원수이자 암덩어리’, ‘국가 대개조’ 등의 표현을 쓴 사례가 있다. 10월29일 시정연설에서도 “근본적인 체질개선”, “혼신의 노력”, “과거의 적폐를 과감히 바로잡아”,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히 척결하여 그 뿌리를 뽑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1960~1970년대에 박정희 정권은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고도성장을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국민을 상대로 불법적인 폭력을 휘둘렀다. 야만의 시대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임미리 박사의 ‘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이라는 논문이 있다.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의 주축으로 보는 경기동부연합이 1960년대 말~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의 철거민 강제이주로 형성된 광주대단지와 광주대단지 사건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아버지가 쌓은 업을 딸이 풀어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흔적을 지워버리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 된다.

유럽평의회 자문기관으로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가 있다. 베니스(베네치아)에서 회의가 열리기 때문에 베니스위원회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회원국이다. 1999년 12월 채택된 ‘정당의 금지와 해산 및 유사조치에 관한 지침’이 있다. 핵심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다.

“정당 해산은 예외적 조처로서 그 행사에는 극도의 자제가 요청되며, 정당 해산은 민주적 헌법질서의 전복을 목적으로 한 폭력의 사용 또는 사용의 주장과 그를 통한 기본적 인권의 손상이 있는 경우에만 정당화된다.”

“정당 구성원의 개별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정당 전체에 물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어쩌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체제다. 2014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일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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