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회의실에서 임채정 상임위원장(가운데 안경 쓰고 넥타이 맨 이)이 쌀협상 비준동의안의 상정을 위해 위원장석으로 향하자, 단병호 의원(오른쪽 안경 쓰고 점퍼 입은 이)을 비롯한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이를 저지해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쌀협상 비준안 상정 놓고 통외통위 싸움
통상현안 번번이 여론수렴·심의 부실 심각
통상현안 번번이 여론수렴·심의 부실 심각
23일 오전 10시15분, 국회 본관 4층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회의실. 임채정 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국회 경위들과 보좌진 20여명의 호위를 받으며 회의장에 들어섰다. 위원장석은 이날 각 상임위의 국정감사를 포기하고 집결한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이 점거하고 있었다. 곧이어 양쪽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됐다. 의원들과 보좌진, 경위들이 뒤엉켜 험악한 밀고 당기기가 20여분 이어진 끝에 임 위원장은 회의 강행을 포기하고 물러섰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회의장 점거가 계속됐고, 이날 예정됐던 외교통상부 국정감사는 하염없이 지연됐다. 쌀협상 비준안 상정을 둘러싸고 빚어진 이날의 몸싸움은, 통상 문제와 관련해 여론 수렴과 조정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온 국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국회는 지난 6월 쌀협상 국정조사를 하고도 여야의 견해차로 결과보고서 채택에 실패했다. 정부도 관련 보고서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동안 두차례 공청회가 열렸지만, 국회 상임위가 아니라 한나라당과 의원모임 차원에서 각각 개최한 것이다. 농성을 벌인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쌀협상 결과가 국내 농업에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 정부나 국회의 공식적인 전망도 없고 부속합의 내용도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을 근거로 비준안을 심의하느냐”며 “비준안 상정은 곧 졸속 처리로 이어질 것”이라고 불신을 드러냈다. 국정조사 이후 비준안 상정이 계속 진통을 겪고 있지만, 쌀을 ‘다루는’ 농림해양수산위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비준안을 처리해야 하는 통일외교통상위에서 지난 8월 농해수위에 의견서를 요청했는데도 아직까지 공식 답변이 없다. 김광원 농해수위 위원장은 “통외통위 위원장에게 구두로 ‘추석 이전 상정만 미뤄달라’고 요청했던 만큼, 추석이 지났으니 통외통위 상정에 대해 우리가 왈가왈부할 것 없다”고 말했다. 통외통위 역시 처리에만 급급할 뿐, 심도있는 논의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임 위원장은 이날 “통외통위의 비준안 처리는 사실 형식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차례 몸싸움이 끝난 뒤 여야 의원들이 위원장실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최성 열린우리당 의원이 “외교통상부 국정감사를 통해 농민들이 원하는 쌀협상 후속대책 관련 질의를 집중적으로 하자”고 제안했으나, 임 위원장은 “외교부는 해당 부처가 아니다”고 말했다. 쌀협상 비준안을 소위원회에 넘겨 심도있게 심의하자는 정의화 한나라당 의원의 제안도 국회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처리 시한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쌀협상 결과에 따른 구체적인 영향과 대책 논의도 없이 비준안부터 처리하자는 태도인 셈이다. 이처럼 통상 협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의 밀실협상 의혹과 국회의 졸속 비준 논란이 되풀이되자, 통상분야에 대한 국회의 감독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미국은 통상문제에 대한 권한을 국회가 갖고 특정 협상을 행정부에 위임하는 형태여서, 협상과정에서 그때 그때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있다”며 “반면 우리는 통상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국회가 보고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박용현 성연철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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