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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국회선진화법이 옳았다

등록 2014-12-02 20:09수정 2014-12-02 23:37

성한용 선임기자의 현장칼럼
날치기와 몸싸움이 사라졌다
예산은 시한을 지켰지만
주요 법안이 첩첩산중
이번엔 여당이 더 양보해야 한다
최태민 목사 사위였던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으로 세상이 시끄럽지만 국회는 2일 2015년도 정부 예산안을 의결했다.

밤 10시10분이 지나서 예산안 가결을 선포한 뒤 의사봉을 치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얼굴은 엄숙하기만 했다.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는 헌법 54조 2항을 지켜려는 의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의화 의장은 예산안 처리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여야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법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머리를 맞대면 대승적으로 타협하고 생산적인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정치적인 대립에 의해 헌법을 번번이 무시해온 비정상적인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이런 과정이 쌓인다면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신뢰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이 정한 기한에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2012년 5월 개정된 국회법,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올해부터 11월30일까지 예산결산위원회가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하면 정부가 제출한 원안이 12월1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굴욕적인 양보가 불가피하다. 이번에 어쨌든 여야 합의로 수정안을 만들어내고 쥐꼬리만큼이라도 야당의 요구사항을 밀어넣은 것은 우윤근 원내대표의 공이 크다.

국회선진화법은 예산에 대한 주도권을 정부·여당 쪽에 확실히 보장하고 있다. 그 대신 여야의 이해가 엇갈리는 갈등 법안은 야당이 타협해주지 않으면 국회 통과가 어렵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2012년 5월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9대 국회 임기개시일인 2012년 5월30일부터 시행된 국회법 개정안의 개정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심의한다. 소수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 예산안을 법정기한 내에 처리한다. 의장석 또는 위원장석 점거를 금지한다.”

국회선진화법은 여당의 날치기와 야당의 폭력 저지에 신물이 난 국회의원들이 1년 이상 토론을 거쳐 만든 법안이었다. 여당 원내대표였던 황우여 사회부총리, 야당 원내대표였던 김진표 전 의원이 막판에 집중력을 발휘했다. 두 사람 모두 온건 합리주의자들이다. 앞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국회선진화법을 2012년 4·11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4·11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한 새누리당 안에서 반대 의견이 터져 나왔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마음이 바뀐 것이다. 5월2일 본회의장 반대 토론을 살펴보자.

“앞으로 국회가 웬만한 법은 상정조차 못하고 프로세스 진행에 있어서 원천봉쇄되기 때문에 이것은 국회가 작동 중지가 되면 결국에는 행정부나 다른 사회기관도 작동 정지가 된다.”(김영선 의원)

“국회선진화다 또는 몸싸움 방지다라는 이름을 붙여서 의원들을 속이려고 하고 있다.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처리를 못하고 식물국회에 이어서 식물정부가 될 것이고 모든 게 마비가 되는 그런 불행한 사태가 올 것이다.”(심재철 의원)

국회선진화법에 반대해 아예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은 의원도 많았다. 홍사덕 의원은 “이건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5년 내내 발목을 잡게 되는 법”이라며 본회의에 불참했다. 국회선진화법은 재석 192, 찬성 127, 반대 48, 기권 17로 가결됐다.

그 뒤 2년 반이 흘렀다. 반대론자들의 걱정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국회에서 날치기와 물리적 충돌이 모두 사라졌다. 의장석이나 위원장석을 점거하는 의원들은 없었다. 올해부터 국회선진화법이 적용되는 예산안은 법정기한 내에 처리됐다. 19대 국회 전반기 법안 처리 건수는 1276개로 역대 최다였다. 법안 가결률은 9.9%로 18대 전반기의 13.6%에 못 미쳤지만 ‘식물국회’는 확실히 아니었다. 국회선진화법은 대체로 입법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대화와 타협을 통한 심의’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의 꽤 많은 의원들과 친여 성향 언론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식물국회가 됐다고 아직도 억지를 부리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국회선진화법 찬성론자인 김세연 의원에게 물어보았다.

“식물국회가 아니라 야만과 폭력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초식국회가 된 것이다. 이제 비로소 성숙한 의회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의회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상임위원회 중심주의가 아니라 소위원회 중심주의로 시스템을 개편하고, 상임위원장과 소위원장을 의석 분포에 따라 나눠먹는 관행을 중단하는 등 제도개혁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래서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예산안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주요 법안은 첩첩산중이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규제개혁 법안이라고 하고, 야당은 재벌특혜 법안이라고 본다. 절충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른바 ‘사자방’ 국정조사와 공무원연금개혁도 합의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타협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는 여당이 많이 물러서야 한다. 국회는 청와대의 하부기관이 아니다. 여당도 대통령의 참모 조직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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