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의 정치 역정
당내 주류세력 퇴행적 행태
종북 프레임과 맞물려 몰락
당내 주류세력 퇴행적 행태
종북 프레임과 맞물려 몰락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결정이 우리 헌정사에 새겨놓은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통합진보당 해산은 그 자체로 수십년 힘겹게 발전해온 한국 진보정치사에 커다란 상처와 오점을 남기게 됐다.
2011년 12월5일 창당된 통합진보당의 지난 3년간 정치 실험과 몰락의 과정은 진보정치에 기대를 품었던 수많은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실망감을 안겨줬다. 헌재 결정을 계기로 통합진보당의 ‘종북 노선’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지난 3년 당의 몰락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이 꼽는 더 치명적인 문제는 ‘종북’이 아닌 ‘진보의 자기성찰 부재’와 ‘변화를 읽는 공감능력 부족’이었다. 진보진영의 한 원로인사는 “반성하지 않고 국민의 눈높이를 읽지 못하면서 점점 고립된 길로 들어섰다. 호시탐탐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어 활용하고 싶은 이들로선 마음껏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이 열린 셈”이라고 말했다.
결정적 계기는 헌재가 이른바 ‘종북 성향의 주도세력’으로 지목한 당내 주류세력의 선거부정 사건이었다. 당시 주류세력들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야권연대 전략을 염두에 두고 의회 진출을 늘리는 데만 골몰했다. 이정희 대표가 출마했던 관악을 경선 여론조사 조작 사건에 이어, 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도 대리투표 등 집단적·조직적 부정 의혹이 제기됐지만, 주류들은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진보의 도덕성’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모습을 보였다. 선거 부정에 반발하는 당내 비주류와 갈등을 빚다, 급기야는 ‘머리끄덩이 사건’으로 상징되는 폭력 사태까지 빚었다. 이 때문에 당 안팎의 불신이 커지고, 사태의 배후를 찾는 과정에서 ‘종북’ 논란도 다시 불거졌다. 그 결과 비주류는 물론, 대다수 여론이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동반사퇴할 것을 요구했지만, 주류는 끝까지 버텼다. 그 결과는 몰락의 길이었다.
공안당국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 논란이 한창일 당시 검찰은 통합진보당 당사 압수수색으로 당 전체를 흔들어놓았고, 이석기 의원 및 당내 주류세력들의 선거 부정을 겨냥한 수사를 시작했다. 대선이 끝난 뒤엔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라는 거대한 혐의로 이석기 의원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지난해 11월엔 법무부가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을 보는 시선은 진보적 지지층에서마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여론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채 고립되어갔다.
통합진보당 주류세력들이 보여준 퇴행적 행태가 공안당국과 보수언론이 합작한 ‘종북 프레임’과 맞물리면서,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종북세력’이라는 논리를 구성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거의 부담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통합진보당 고위 당직자를 지낸 한 인사는 “당내에 주체사상에 기대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현실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실 정치에서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성급한 욕심이 문제였고, 달라진 세상에서도 과거 운동권 시절의 방식을 고집했던 것이 우리의 몰락을 부른 것”이라고 말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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