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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비례대표는 건드리지 말라

등록 2015-01-26 20:50

성한용 선임기자의 현장칼럼 창
단정하게 머리를 깎고 염색을 했다. 일요일 새누리당사에 나타난 이주영 의원은 팽목항에서 만났던 해양수산부 장관과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가 누구냐는 질문이 나왔다. “예상보다 빨리 선거가 잡혀서 정책위의장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출마선언부터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유승민 의원은 27일 출마선언을 한다. 유승민 의원도 외국에 나갔다가 서둘러 들어왔다. 허둥대는 기색이 역력하다. 원내대표 선거는 2월2일에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2월8일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와 최고위원들을 선출하면 여야 지도부 정비가 마무리된다. 여야 지도부가 당장 2월 임시국회에서 맞닥뜨리는 가장 중요한 현안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구성이다. 지난 15일 대표와 원내대표들의 2+2 회동에서 그렇게 합의가 이뤄졌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소선거구제 및 비례대표제로 되어 있는 현재의 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나 복합선거구제로 바꿀 것인지 말 것인지,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사안들이다.

그런데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면 이런 논의가 착착 이루어질까? 아니다. 매우 오랫동안 지지부진할 것이다. 언론의 비판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기득권을 가진 현직 의원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현직 의원들은 대체로 오픈 프라이머리에 찬성하고 선거구제 개편에는 반대한다. 특히 절대다수인 지역구 의원들의 선거구제 개편 반대는 필사적이다.

김무성 대표는 새해 기자회견에서 “중대선거구 문제는 여야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현행 틀을 바꾸기는 좀 어렵지 않겠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무성 대표의 정치적 기반은 현직 의원들이다.

현직 의원들의 또다른 관심사는 선거구 획정이다. 헌법재판소 결정대로 인구편차를 2 대 1로 조정하려면 인구밀집지역 선거구를 10여개 늘리거나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 선거구를 그만큼 줄여야 한다.

대다수 지역구 의원들은 비례대표를 줄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속내를 기자들에게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새누리당의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은 “국민들이 직접 뽑는 지역구를 줄일 수는 없다. 없어지는 지역 선거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비례대표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지역구 의원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자는 얘기다. 여기에다 여야가 검토중인 ‘권역별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현재처럼 각 직능과 소수자를 대표하는 비례대표 의원들의 공간은 훨씬 더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비례대표제도는 민의를 효율적으로 국정에 반영하고 정당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고안된 정교한 장치다. 대의제 원리에 따르면 각 정당이 득표율만큼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 비례대표제도는 여기에 부합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구 당선이 어려운 직능 및 소수자 대표들이 국회에 진출하는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은 각 지역의 이익을 초월해 국가 전체의 이익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진영 국회 입법조사관의 분석에 따르면, 지역구 의원의 관심 분야는 농림수산, 국토개발, 조세재정 순이고, 비례대표 의원은 여성가족, 보건복지, 노동 순이다.

비례대표 의석이 줄면 쉽게 말해 새누리당이 자랑으로 여기는 다문화 가족의 상징 이자스민 의원, 새터민의 상징 조명철 의원 같은 정치인을 앞으로는 보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10~20%의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는 진보정당은 국회 진출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국회의 정책 역량은 점점 더 떨어지고 지역에 뿌리를 둔 기득권 세력이 정치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마디로 정치가 크게 퇴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현재 300명(지역구 246명, 비례대표 54명)인 의원정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정치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적정한 국회의원 숫자는 350~450명이다. 50~150명을 늘리는 것이 어렵다면 인구편차 조정과 권역별 석패율 제도 도입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늘려도 된다.

그런데 어렵다. 가장 큰 난관은 여론의 반대다. 지난해 11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제도 변경 시 국회의원 증원’에 대해 응답자의 86%는 반대했고 찬성은 10%에 그쳤다. 정치 불신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모두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한다. 현직 대통령, 대기업, 관료, 언론 등이 국회의원 증원에 기를 쓰고 반대한다.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나면 자신들을 견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만큼 자신들이 행사하던 권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보좌진 축소와 세비 삭감 등으로 현재 국회의원들이 사용하는 예산 테두리 안에서 정원을 늘리는 타협안을 내세우고 있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치 불신에 푹 젖어 있는 국민들이 국회의원 증원을 쉽사리 동의해 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다른 방안이 없다. 이대로 놔두면 정치개혁특위는 올가을쯤 시기상조론을 내세우며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쪽으로 결론을 낼 것이다. 결코 그래선 안 된다. 전체 의석이 늘어나더라도 반드시 비례대표 의석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려야 한다. 이번 기회에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전체 의석을 늘리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어떨까.

정치 지도자들이라면 담대해야 한다. 욕먹을 각오로 나서야 한다. 국민들에게 솔직히 실상을 털어놓아야 한다. 선거구제를 개편하고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정치의 역할이 확대되고 대한민국의 미래도 열릴 것이다.

이주영 의원이 출마선언에서 “정치 불신을 극복해야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고 경제발전을 이루어 갈 수 있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당선되면 꼭 실천하기 바란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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