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모임인 국가경쟁력포럼 소속 의원들이 지난 6월 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법 개정안 위헌논란‘을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제정부 법제처장이 인사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의원 40~50명에 불과한 친박
유승민 사퇴 촉구하면서도
‘표 대결 땐 장담 못해’ 의총은 반대
“중진들 무력, 소장파 사라져
분열 치유할 자정능력 상실” 지적
유승민 사퇴 촉구하면서도
‘표 대결 땐 장담 못해’ 의총은 반대
“중진들 무력, 소장파 사라져
분열 치유할 자정능력 상실” 지적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여권 내 갈등이 좀처럼 정리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당내 일부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유승민 흔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비박’(비박근혜) 의원들은 큰 움직임 없이 거부권 정국을 관망하는 형국이다.
여당 내 친박 의원은 40~50명 안팎으로, 따지고 보면 새누리당 전체 의석수(160)의 25~30%에 불과하다. 국회의장, 당대표, 원내대표 등 잇따른 당내 투표에서 친박 후보가 판판이 패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소수 친박’들이 이처럼 위세를 떨칠 수 있는 것은 청와대를 등에 업은 탓도 있지만, 중재에 나서야 할 당내 중진세력이 무기력하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을 당내 개혁세력이 사라져 견제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당내 분열을 치유할 자정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친박과 비박의 직접적인 공방은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김무성 대표는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논의하는) 의원총회를 열 때가 아니다”라며 “유 원내대표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해온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유 원내대표가 (거취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원내 입법상황 등을 점검하는 등 통상 업무를 이어갔다.
친박들은 의원총회를 열어 원내대표 사퇴 여부를 표결로 결판내자던 기존 태도를 바꿔 이날은 의총 반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자칫 엄청난 다른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의총을 의원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의총에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두고 본격 표 대결까지 갈 경우, 무기명 투표에서 당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박계에 밀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앞서 친박들은 지난 29일까지 의원 30여명의 서명을 받아 의총 소집 요구서는 마련해 놓은 상태다. 친박계는 유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오는 6일을 계기로 거취를 표명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의총 표결도 자신없어하는 소수파 친박들이 ‘유승민 찍어내기’ 전면에 나서 당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배경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확실한 구심점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행동하기에 가능하다. 한 재선 의원은 “친박은 ‘박근혜’를 동심원으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비박은 김무성계, 유승민계, 친이(친이명박)계 등 세부적으로 이해관계가 저마다 달라 조직화하기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과거 새누리당은 전신 한나라당 때부터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방향타’ 구실을 해온 이른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등 개혁적 소장파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개혁세력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데다, ‘다른 목소리’도 개별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29일 재선 의원 20명이 성명을 냈지만, “당 최고위원회가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일방적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는 수준에 그쳐, 청와대와 친박에 대한 비판은 자제하는 등 결기는 약해 보인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과거 16~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에는 미래연대, 수요모임, 민본21 등 꾸준히 소장파 모임들이 있어 청와대와 당 주류세력을 향해 쓴소리를 하며 당 쇄신을 주도해왔지만, 지금은 소장파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런 당내 분위기가 대다수 의원들을 침묵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친박의 요구대로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경우, 청와대의 당 장악력은 더욱 커지겠지만 이는 내년 총선에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새누리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를 뽑은 이유는 당이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해선 총선에서 절대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동한 결과”라며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고 또다시 친박 원내지도부가 꾸려지면 수도권 의석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수도권’과 박 대통령 영향력이 막강한 ‘영남권 친박’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새누리당’ 전체적으론 손실이 오더라도, ‘친박’에는 이로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명분도 원칙도 없는 일부 친박 돌격대의 ‘유승민 사퇴 요구’의 본질은 당내에서 입지가 밀리고 있는 친박들이 내년 총선 공천과 차기 대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당권 투쟁 측면이 강하다”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위한 정치공학적 계산이 당은 물론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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