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왼쪽 둘째)과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4인 대표자회의에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오른쪽 둘째),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맨 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공동실태조사 뒤 법안 반영’
합의문 잉크 마르기도 전
새누리, 5대 법안 당론 발의
양대노총 “폐기해야” 반발
합의문 잉크 마르기도 전
새누리, 5대 법안 당론 발의
양대노총 “폐기해야” 반발
일반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를 뼈대로 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합의 이후, 새누리당이 노동시장 구조개편 관련 5개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며 입법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도 청년 구직자 지원을 목표로 ‘청년희망펀드’ 운용 계획을 밝히는 등 정부·여당이 동시다발적으로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하며 노동시장 개편 작업에 나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노사정이 추후 논의 과제로 남겨둔 비정규직 기간 연장과 파견 확대 등 주요 쟁점과 관련한 부분까지 새누리당이 정부안대로 법안을 발의해, 노사정 합의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노동시장 개편을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새누리당은 16일 국회에서 정책의원총회를 열어 정부의 노동시장 개편 작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동 관련 5개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이날 오후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여당이 제출한 5개 법안은 △근로기준법 △파견근로자법 △기간제근로자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등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의총에 앞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앞으로 넘어야 할 산과 통과할 관문이 수없이 많겠지만,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 내 노동개혁을 완수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세부적 실천방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정기국회 내 노동개혁의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이 제출한 5개 법안 가운데, 현행 2년인 기간제(비정규직) 노동자의 계약기간을 4년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기간제법과 파견노동자 허용 대상을 제조업과 고소득·전문직 고령자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파견근로자보호법은 노동계가 폐기를 요구하는 사안이다. 이 때문에 지난 13일 노사정위 합의에서도 이들 의제만큼은 “관련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실태조사,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집중적으로 진행해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사항은 정기국회 법안 의결 시 반영하도록 한다”고 합의문에 명시했다. 추후 지속적으로 논의하기로 한 노사정의 약속을 새누리당이 법안 제출 강행으로 무시한 셈이 됐다.
노동계는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노사정 합의 당사자인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어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를 파기하려는 새누리당의 일방독주는 정부와 여당이 합의를 깨겠다는 의도인지 묻고자 한다”며 “합의문조차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법안은 폐기돼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책논평을 통해 “새누리당 법안은 통상임금 축소, 노동시간 연장,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회 박탈, 불법파견 합법화 등을 불러올 노동법 개악안”이라며 “재벌 특혜로 비난받고 있는 노사정 야합안에 제조업의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사용을 장려하는 내용을 슬그머니 추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노동시장 개편을 위해 입법 사항이 필요한 만큼 일단 여당안을 제출해 놓고, 12월 정기국회 마감 전까지 노사정 합의안이 도출되면 이를 법안에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여야가 관련 논의를 하기 위해 일단 ‘안’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론으로 법안을 발의했다”며 “앞으로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논의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노동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오는 20일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를 열어 법안 통과를 위한 세부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새누리당의 ‘속도전’ 배경에는 청와대 주문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상생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회에서의 조속한 법률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노동권 침해와 반인권적 가이드라인을 통해 노동시장을 일방적으로 개악하려는 정부 입장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해 국회 처리 절차가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김성주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여야 노동관련 특위를 근간으로 정부와 전문가, 노사 대표, 시민사회단체, 청년, 비정규직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특위 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노사정 합의를 계기로 지난 15일 자신이 제안한 청년희망펀드에 일시금으로 2000만원을 기부하고, 앞으로 매달 월급에서 20%를 펀드에 납부하기로 하면서 노동시장 개편 실행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등 여당 최고위원들도 모두 기부에 동참하기로 했다.
김경욱 김민경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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