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여 “부당한 정치공세” 일축, 건의안 거부 명분 쌓기
야, “총선 민심 살피지 않는 박 대통령 ‘오기 정치’ 결과”
야, “총선 민심 살피지 않는 박 대통령 ‘오기 정치’ 결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24일 새벽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면서, 이제 시선은 일제히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에 쏠리고 있다. 여태껏 국회의 뜻과 상관없이 장관 임명을 강행해온 박 대통령이 이번에도 국회 의견을 무시할 경우 향후 정국은 예측하기 어려운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안보 및 민생 현안은 물론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의혹, 우병우 민정수석 거취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의 장기 대치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박 대통령, 해임건의안 수용할까
청와대는 이날 김 장관의 해임건의안 통과 뒤 수용 여부는 따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침묵’이 ‘고민’을 뜻하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미 해임건의안 상정 자체를 “부당한 정치 공세”로 일축한 바 있고, 청와대나 여권에서도 박 대통령이 해임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게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야당이 김 장관의 해임 사유로 주장하는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거나 근거 없는 의혹들”이라고 강조했으며,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현재 쌀값 폭락 등 현안이 쌓여있는데, 직무를 수행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장관을 해임하라는 야당의 요구는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여당이 일제히 “헌법상 해임건의 요건도 맞지 않고, 야당이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기간 연장 등과 맞바꾸려고 했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박 대통령의 거부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24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장·차관 워크숍에도 김 장관을 그대로 참석하도록 해, 김 장관에 대한 신임을 재확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해임건의안을 수용하면 직권남용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 문제도 형평성 차원에서 다시 논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던 5차례 모두 장관이 물러나지 않은 사례가 없다는 점은 청와대의 부담으로 남는다. 1987년 개헌 이후엔 김대중 정부의 임동원 통일부 장관(2001년)과 노무현 정부의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2003년)의 해임건의안이 통과했고, 이들 모두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김재수 장관이 버틸 경우, 대통령이 국회의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첫 번째 사례가 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이 끝까지 김 장관을 감싼다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국회를 상대해야 하는 장관으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 여야 강경대치·정국파행 불가피할 듯
여소야대라는 달라진 지형으로 출발한 20대 국회는 개원 뒤 첫 표결에서부터 향후 험난한 정국을 예고했다. 박 대통령의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해임건의안의 본회의 통과는 집권 후반기 대통령의 국정 동력에 적잖은 타격을 준 게 분명해 보인다. 여야가 약속한 ‘협치’는 당분간 물 건너갔고, 사안마다 이번 표결과 같은 충돌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의 ‘부적격’ 판정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김 장관 임명을 강행했고, 여당은 박 대통령의 뜻만 충실히 반영했을 뿐 거대 야당을 설득할 정치력도 재량권도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소야대로 국회 지형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지난 19대 국회 때처럼 여당을 밀어붙이고 야당에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는 ‘오기 정치’를 고수한 태도가 이번 표결 결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음주경력 논란의 경찰청장 임명을 밀어붙인 데 이어 해외 순방 중 야당이 줄줄이 부적격 의견을 채택한 장관 후보자들의 임명을 강행했고, 세월호 특조위 활동 연장이나 우병우 민정수석 사퇴 요구도 묵살했다. 국민적 의혹이 커지고 있는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문제에 대해서도 엄포로 일관하는 등 야당을 철저히 궁지로 몬 결과라는 것이다. 해임건의안이 제출된 뒤 한때 제3당인 국민의당의 이탈 움직임이 있었지만, 곧바로 야권이 결집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석진환 최혜정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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