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법률자문위원회 위원장인 최교일 의원(가운데)과 변호인들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 '정세균 국회의장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려고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새누리당은 29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유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헌법재판소(헌재)에 권한쟁의심판도 청구했다. 정 의장이 지난 24일 새벽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한 것이 “여당과 의사일정 협의 없이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한 행위라는 게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당시 본회의 차수를 일방적으로 변경해 ‘직권남용’을 했고, 국회사무처를 통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협의를 거쳤다”고 사실과 다른 보도자료를 냈으므로 ‘허위공문서 작성·유포’라고 주장한다.
새누리당의 형사 고발과 권한쟁의심판 청구 모두 ‘국회의장의 의사진행 권한이 어디까지인가’의 문제로 통한다. 그런데 과거 비슷한 경우에 대한 3건의 헌재 결정을 보면, 헌재는 일관되게 국회의장의 의사진행 권한을 보장해왔다.
2010년 박희태 국회의장은 아랍에미리트 파병 동의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 팩스로 의사일정을 송부했다. 민주당은 국회법 77조에 규정된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를 하지 않았다며 박 의장을 상대로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재는 “국회법상 ‘협의’의 개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고, 판단과 결정은 종국적으로 국회의장에 맡겨져 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 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 당시 정세균 의장은 국회 의사과 직원을 통해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에게 의사일정이 담긴 종이를 전달하려 했으나, 김 수석부대표는 “정진석 원내대표와 협의할 일”이라며 종이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2005년 한나라당은 김원기 국회의장이 본회의 의사일정 5번째 순서였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첫번째로 변경해 표결에 부친 것을 문제삼았다. 이번에 정세균 의장이 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순서를 임의로 바꿨다는 새누리당 주장과 같은 상황이다. 당시 헌재는 “국회의장은 장내 소란으로 정상적인 의사진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판단했다”며 한나라당의 청구를 기각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도, 열린우리당은 박관용 국회의장이 탄핵안을 표결하는 본회의 개의 시각을 마음대로 앞당겼다며 헌재에 제소했다. 헌재는 탄핵안 처리 시한(본회의 보고 뒤 72시간)이 다가오는데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점거로 정상적 의사진행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며 열린우리당의 제소를 기각했다. 정세균 의장도 24일 차수를 변경해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한 이유 중 하나로 ‘해임건의안은 72시간 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국회법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헌재 관계자는 “일련의 헌재 결정을 보면, 결국 국회 의사진행 문제는 법적으로 다룰 게 아니라 국회의원들 스스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문제”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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