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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박근혜‘나라살리기 운동’의 유효기간은?

등록 2005-11-02 21:23수정 2005-11-03 10:02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상임운영위 회의에 앞서 10·26 재선거 당선자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뒤 축하의 말을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상임운영위 회의에 앞서 10·26 재선거 당선자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뒤 축하의 말을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분석] 박근혜대표의 ‘정체성 올인’은 정말 ‘구국운동’이었나

“강정구 교수를 구속하지 말라는 빨갱이 정권이 시퍼렇게 있는데, 대체 선거 이겼다고 손 놓고 있자는 겁니까? 그것 선거 끝났다고 이제 신경도 안 쓴다면, 사실은 선거용 색깔론에 정치공세였던 것이 ‘들통’납니다.”(한나라당 홈페이지 ‘lbg219’)

10·26 재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요란했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정체성 수호 구국운동’도 막 내리나?

박 대표는 천정배 법무장관이 강정구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 지휘를 내리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는 결코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비장한 ‘구국운동’ 선언이었다. 이때부터 한나라당 지도부는 ‘강정구와 국가 정체성 수호’를 선거 앞날까지 입에 달고 살았다. 뚜렷한 이슈가 없던 10·26 재선거는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구도로 치러졌다. 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매도하는 색깔론도 살아났다.

비장했던 구국운동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시들해졌다. 국가정체성 투쟁 구호가 선거용 색깔론이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까닭이다. 선거가 끝난 한나라당에 강정구와 국가 정체성은 단물 빠진 ‘껌’인가.

선거 앞두고, 한나라당 지도부 ‘강정구·정체성’ 타령


천 법무장관의 강 교수 수사지휘권을 놓고 박 대표는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총출동을 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공연히 부정하는 대학 교수를 비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국가 정체성 수호 구국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박 대표는 “거대한 구국대회를 열겠다”며 ‘장외투쟁’을 선언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20일에는 노 대통령을 겨냥해 “국가 정체성과 관련해 공식 기자회견을 했고, 또 대통령께 질문을 몇 가지 했다”며 “여기에 대해서 왜 아직까지 답이 없는지, 왜 답을 못하고 있는 것인지, 답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24일 상임위원, 상임위 간사단 연석회의에서는 “나라 지키기는 일회성으로 한번의 장외투쟁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며 “통합과 미래특위를 통해서 구체적인 방안을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국가 정체성 수호를 재선거의 주요 이슈로 삼았다. 박 대표 선거유세의 대부분은 “강 교수 두둔하는 현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것이었다. “경제 망쳐 놓고는 그것도 모자라 나라의 뿌리까지 흔들고 있다. 대한민국이 6.25때 적화통일될 수 있었는데 미국 때문에 실패했다고 얘기하는 사람을 청와대, 여당, 심지어 법무부장관까지 총출동해서 보호하려 한다.”(10월25일 대구 동을 선거유세) 선거전까지 박 대표의 행보는 상생과 블루오션 정치를 표방해온 평소 스타일에서 한참 멀었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박 대표를 따라 색깔론에 ‘올인’했다. 상임운영위원회, 주요당직자회의, 논평, 대변인 브리핑 등에 ‘강정구와 국가 정체성 사수’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현 정부는) 의회를 껍데기로 만들고, 법치주의를 껍데기로 만들고 인권을 무시하는 김정일 정권과 성격이 점점 닮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노무현 정권과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강정구 교수를 보호하려고 법의 원칙, 법의 운영원리를 무시하는 자세와 일맥상통한다.”(김영선 최고위원 26일 최고중진연석회의)

선거에 어떤 영향 미쳤을까?
보수층 결집…박 대표 강경태도는 지난해 학습효과였나?

박 대표의 정체성 올인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재선거 4곳 승리에 정체성 논란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해 보인다.

CBS 시사프로그램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가 지난달 2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잘 말해준다. 이 조사에서 ‘10.26 재보선 여당 참패'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57.3%가 ‘민생경제와 체감경기 악화’를 꼽았고 17.2%가 ‘강정구 동국대 교수 불구속 지휘로 인한 국가정체성 논란’을 지적했다. 이런 결과는 박빙의 승부로 진행된 이번 재선거에서 정체성 논란이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해 승패를 가른 중요한 변수였음을 의미한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세와 보수성향이 강한 대구지역 선거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실장은 “대구 동을의 경우 선거 초반 이강철 후보가 ‘지역개발론’으로 이슈를 선점했으나 박 대표가 정체성 논란을 제기하면서 색깔론으로 아젠다가 옮겨지고 한나라당 지지층인 보수층이 결집했다”며 “정체성 논란이 재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실장은 “지난해 국가보안법 논란을 앞두고도 박 대표가 정체성 문제를 제기해 보수층이 결집하면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는데 선거에선 더욱 뚜렷한 경향으로 나타났을 것”이라며 “박 대표의 강경한 태도는 지난해의 학습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풀이했다. 박 대표가 재선거를 노리고 계획적으로 색깔론을 제기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선거 뒤, 구국운동은 일회성 운동이 아니라면서?

선거 뒤 박 대표도 한나라당도 정체성과 관련해 입을 다물었다. 박 대표는 선거 다음날인 27일 상임운영위원회에서 “나라 흔들기에 대해 앞으로 전지역, 각 단체와 연대해 국민의 정치와 뜻을 책임정치로서 보여주겠다”고 언급했다. 28일에는 미니홈피에 정체성과 관련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이번에 색깔론을 가지고 선거에 이용했다고 말을 하는 것은 지금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체성 구국운동을 어떻게 벌여나갈 것인지 구체적 언급은 없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강 교수와 정체성에 대해 언급이 없다. 선거 뒤 열린 대정부질문에서도 정체성과 색깔론을 물고 늘어지는 의원들은 거의 없었다. <한겨레>가 선거 뒤 상임운영위원회, 주요당직자회의, 논평, 대변인 브리핑 등을 분석해봤더니 강 교수와 정체성에 대한 언급은 전여옥 대변인이 2차례, 이제춘 국제위원장 등이 유일했다.

한나라당은 3일께 당 홈페이지에 ‘나라 지키기 특별 사이트’를 만들어 소속 의원과 누리꾼(네티즌)들의 글을 싣겠다는 계획 이외엔 뚜렷한 ‘구국운동’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마저도 박 대표와 지도부가 정체성 수호운동에서 발을 뺀 인상을 주는 가운데 활발한 참여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단기 승부 성공했으나 ‘꼴통보수’ 낙인으로 큰 선거에선 ‘독’

박 대표는 “정체성 수호가 일회용이 아니”라고 했으나, 선거가 끝난 뒤 달라졌다. 재선거 승리 뒤 당의 지지율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고, 정국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자극적인 이슈를 제기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박 대표는 적당한 모양새로 정체성 논란을 마무리한 다음 자신의 주요 정치이슈인 민생경제를 다시 들고 나올 것이란 관측이다.

정체성 수호 구호가 장기적으로 박 대표와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지도 알 수 없다. 박 대표가 색깔론이라는 낡은 카드를 꺼내들어 ‘수구꼴통’이라는 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되살렸기 때문이다. 또 보수층의 결집에는 성공했으나 냉전세력을 자처하고 나섬으로써 진보층의 ‘반 박근혜’ 정서는 더욱 확산되었다.

한귀영 실장은 “한나라당이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집권을 하려면 지지층의 결집이 아니라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색깔론을 제기해 20~30대들에게 혁신하는 보수가 아니라 낡고 구태의연한 모습을 되풀이한다는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낡은 보수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박 대표의 정체성 주장은 그런 점에서 ‘독’이다. 그러나 ‘애국주의(나라살리기)’를 자신의 주요한 정치 콘텐츠로 키워나가고 있는 박 대표가 쉽게 정체성 수호를 버리기도 어려워 보인다. 박 대표가 정체성 문제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 그의 대권 행보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포인트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며 ‘구국운동’에 나선다고 했던 한나라당은 10월26일 이후 더이상 ‘구국운동’을 벌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재선거 4곳 승리’란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쉽게 나라가 구해졌는가? 기껏 국회의원 재선거가 곧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구국운동’의 대상인가? 일찍이 ‘구국’운동에 몸바쳤던 선현들과 뭇 백성들이 거대정당의 선거용 구호로 전락한 ‘나라 살리기’를 어떻게 볼까?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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